[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배우 김민규 얼굴엔 소년미가 가득하다. 청춘 드라마의 상큼함이 터져 나올 것만 같다.
김민규는 MBN ‘세자가 사라졌다’(연출 김진만, 극본 김지수)에서 소년과 성인 경계에 선 도성대군의 성장통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그는 “도전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는 편이다. 첫 사극이라 부담됐지만, 경험이 많은 선배들 사이에서 많이 배웠다”며 “20부작이라 오랜 시간 준비했다. 이제 보내줘야 해서 시원섭섭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극 중 도성대군은 연정을 품은 세자빈 최명윤(홍예지 분)을 놓고 이복형제인 세자 이건(수호 분)과 대립한다. 설상가상 할아버지인 좌의정 윤이겸(차광수 분)은 도성대군을 세자로 옹립하기 위해 갖은 권모술수를 부린다. 정작 도성대군의 속내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도성대군은 외로운 캐릭터예요. 형은 도성 밖으로 나가고, 아버지인 왕은 아파서 누워있어요. 중전인 엄마는 계속 사고 치고 다니고, 나중엔 할아버지한테 멱살까지 잡히죠. 짝사랑하는 여인은 날 밀어내고, 대비(명세빈 분)한테 미움 받으니 얼마나 외롭겠어요. 그간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애착이 많이 갔어요.”
권력욕이 없는 도성대군을 표현하기 위해 8회에서는 광기어린 ‘칼춤’을 벌이기도 했다. 궁 한복판에서 짙은 눈화장을 한 채 양손에 칼을 쥐고 굿판을 벌였다. 이런 도성대군의 ‘미친’ 연기 덕에 세자 책봉식이 미뤄지기도 했다.
“동료 배우와 선배들과 리딩할때 ‘칼춤’ 어떻게 하냐고 걱정을 많이 해주셨어요. 촬영장에서 현직 무당에게 ‘칼춤’을 배웠죠. 2분 정도를 칼을 들고 내리뛰었는데, 숨이 차서 쓰러질 뻔했어요. 울면서 춤도 추고 연기도 해야 되는 장면이라 힘들었지만, 여러모로 잊지 못할 장면이었어요.”
회차가 거듭될수록 도성대군은 삐뚤어졌다. 흠모한 여인을 형에게 내주면서 따뜻했던 눈빛도 차갑게 바뀌었다. 김민규는 “극 중반을 넘어가면서 감정을 많이 쓰게 됐다”며 “그때마다 PD님께 계속 전화드리며 귀찮게 했다”고 배시시 웃었다.
MBC ‘킬미힐미’(2015),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2017)을 연출한 김진민 PD는 ‘세자가 사라졌다’에서 로맨스와 역사를 버무렸다. 도성대군은 각 인물들의 중심에서 선을 지키는 캐릭터다.
“연기할 때 감정을 이어가려고 직전 회차 사건 전개시점부터 다시 읽거든요. 그러면서 생각난 아이디어가 있으면 PD님이나 선배님께 직접 제안하기도 했어요. 편안하게 다 받아주셔서 감사하죠.”
어머니인 중전(윤세례 분)이 옥새를 빼돌리며 함구하고 있는 장면에서 함께 눈물을 쏟아낸 것도 김민규의 아이디어였다. 김민규는 “눈물을 흘리는 감정이 대본엔 없었는데 옥새를 형에게 준 걸 알고 서럽단 생각이 들었다”며 “어머니도 함께 울면서 좋은 장면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도성대군이 첫사랑 명윤을 보내주기로 마음먹는 장면도 애절함이 가득했다. 그를 방안에 가두고 서로 문을 기댄 채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낭자가 평생 내 여인이 되지 않아도 좋소. 낭자를 살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것이오.” (도성대군)
“이제라도 저에 대한 집착을 끊으시고 대군께서 행복한 길을 가시기 빕니다.”(명윤)
절절한 대사가 이어지는 장면을 지켜보던 김 PD는 잠시 편집을 멈추고 직접 메시지를 보냈다.
“이 장면 편집하는데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났다.”
최고의 칭찬이었다. 지난해 11월부터 반년 가까이 촬영한 드라마의 고단함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사극에 능통한 선배 배우들의 조언도 큰 도움이 됐다. 좌의정 역을 맡은 배우 차광수는 “우리 손주 이제 하산해도 되겠다. 이제 더 가르칠 게 없다”며 칭찬해줬다.
김민규는 Mnet ‘프로듀스X101’(2019)으로 데뷔한 뒤 JTBC ‘아이돌’(2021), 넷플릭스 ‘더 패뷸러스’(2022) 등으로 차근차근히 필모그래피를 쌓아 올리고 있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음악을 해보고 싶지만, 지금은 연기에만 집중하고 싶다”며 “드라마도 찍으면서 앨범까지 내는 수호형, 리스펙트한다”고 혀를 내둘렀다.
사랑과 권력 모두 서툴렀던 도성대군은 이루지 못한 사랑 대신 왕좌를 거머쥐며 극을 마쳤다. 김민규도 드라마를 통해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결말에서 이건이 권력을 내려놓고 명윤이와 궐밖으로 나가서 살잖아요.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이 드라마의 주제였고, 그게 투영됐다고 생각해요.” socoo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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