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윤세호 기자] 때로는 결과보다 과정에 의미를 둘 수 있다. 지난 17일 한화 김서현(20)의 투구가 그렇다. 1점을 허용해 13연속경기 무실점 행진이 끊겼으나 홀드와 함께 임무를 완수했다. 무엇보다 단 하나의 볼넷 없이 초지일관 정면승부했다. 후반기 한화 불펜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김서현이다.

이제 빠른 공만 노려서는 절대 공략할 수 없다. 이날 구종 분포도만 봐도 그렇다. 투구수 22개 중 슬라이더가 17개. 속구는 5개에 불과했다. 그만큼 슬라이더에 자신이 붙었다. 슬라이더 비중이 커질수록 시속 150㎞대 속구가 강하게 들어온다. 2023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호명받았을 때의 기대가 마운드 위에서 고스란히 이뤄지고 있다.

그냥 이뤄진 일은 아니다. 시작은 마음의 안정이었다. 지난 6월3일 지휘봉을 잡은 김경문 감독과 식사 자리가 그 시작점이었다. 김 감독 요청으로 한화 유니폼을 입은 양상문 투수 코치는 “감독님께서 서현이와 둘이 밥을 먹었다. 그때 감독님이 ‘우리 흔들리지 말자. 같이 한 길로 가보자’고 하셨다. 그러면서 서현이가 마음을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감독 부임 당시 김서현은 2군에 있었다. 제구 난조에 구속 저하까지 겪으며 1군과 한참 멀어진 상황이었다. 김서현은 구단 공식 유튜브를 통해 “감독님께서 부르실 때 처음에는 트레이드되는 줄 알았다. 솔직히 그때는 트레이드되는 꿈도 많이 꿨다”고 당시를 회상한 바 있다.

이후 양 코치가 배턴을 잡았다. 양 코치는 담당 코치로서 김서현과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데 집중했다. 김서현에게 모든 것을 맡겼던 한화 코칭스태프의 접근법이 180도 달라졌다.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제구난조를 해결했다.

양 코치는 “이전에는 서현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게 아니었나 싶다. 정확히 말하면 코치들이 어떻게 접근할지 몰랐던 것 같다”며 “서현이에게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은 커맨드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테일링 되는 공을 갖고 있다. 즉 가운데만 보고 던져도 테일링이 있으니까 가운데로 가지 않는다. 이게 서현이의 최대 장점”이라고 볼넷을 줄인 비결을 전했다.

김서현은 전반기 8이닝 동안 볼넷 10개를 기록했다. 후반기에는 14.2이닝을 던지며 볼넷 8개다. 삼진은 크게 늘었다. 전반기 4개에 불과했는데 후반기에는 18개다. 두 번째 구종 슬라이더를 통해 어느 상황에서든 믿고 맡길 수 있는 필승조가 됐다.

선택과 집중이 적중했다. 양 코치는 “서현이가 슬라이더에 대한 자신감이 있더라. 그래서 서현이에게 다른 거 필요 없다. 변화구는 슬라이더만 있어도 된다. 슬라이더로 타자들의 배트만 나오게 만들자고 했다”면서 “타자 입장에서는 서현이의 속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스트라이크존 근처에서 형성되는 슬라이더만 있어도 한결 편해진다고 봤다. 서현이의 슬라이더는 일반적인 슬라이더와 달리 휘어나가기보다 떨어진다. 좌타자들이 몸쪽으로 들어오면 깜짝 놀라고 헛스윙도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7월13일부터 8월13일까지 김서현은 무실점으로 굳건히 마운드를 지켰다. 다음 경기인 17일 문학 SSG전에서 실점은 있었지만 리드를 지켰다. SSG 클린업 최정 에레디아 한유섬에게 흔들리지 않고 맞섰다. 에레디아에게 우전 안타, 한유섬에게 적시 2루타를 맞은 뒤 박성한을 범타 처리해 홀드를 올렸다.

지도자가 던진 한마디가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신예 선수에게는 특히 그렇다. 김 감독 부임 전까지 김서현은 이른바 ‘특별 관리 대상’이었다. 관리 대상인데 개성이 너무 강해 관리하지 못했다. 김 감독과 양 코치는 답을 갖고 있다.

양 코치는 “감독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선수가 좀 특이하다고 해서 그냥 놔두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이런 것 아닌가”라며 “도움이 필요한 선수는 그 선수에 맞는 처방을 내려야 한다. 지금까지 정말 많은 선수를 만났다. 어느 선수와 만나도 그 선수에게 맞출 수 있다는 자신도 있다”고 말했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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