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
유상철 전남 드래곤즈 감독이 지난 2002년 6월4일 2002 한·일월드컵 국가대표 시절 본선 조별리그 폴란드와 경기에서 후반 쐐기골을 터뜨린 뒤 기뻐하고 있다. 스포츠서울DB

[스포츠서울] 나 역시 이번 월드컵이 이전과 비교해서 국민의 관심과 호응이 저조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축구인의 한 사람으로 아쉽고 안타깝다. 월드컵 본선을 코앞에 둔 신태용 감독과 코치진, 선수들은 성적 그 이상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건 좋은 경기력, 그 속에서 내부에 새로운 동력이 생겨야 한다.

다행스러운 건 지난 28일 온두라스전에서 이승우, 문선민 등 A매치 데뷔전을 치른 선수들의 맹활약이다. 특히 승우의 플레이를 보면서 깜짝 놀랐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형들과 경기하면 아무래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더구나 만 20세 신예 승우에게 A매치 첫 경기다. 경기 초반엔 그런 부담이 느껴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스스로 하고 싶은 플레이를 마음껏 펼쳤다. 매우 긍정적이다. 이런 점은 기성용, 이청용 등 현재 대표팀 베테랑 선수도 과거 막내 시절에 입증했다. 우리 때와 다르게 어린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부담을 이겨내고 제 기량을 펼치는 건 이르게 유럽에 나가면서 경험치가 생겼기 때문이다. 과거엔 선수들이 큰 대회에서 상대보다 개인 전술이나 체력이 뒤떨어지는 건 아닌데도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긴장을 많이 해서 가진 것을 못 보여준 측면도 있었다. 이승우처럼 재능있는 어린 선수들이 유럽에서 쌓은 경험을 대표팀에서도 잘 발휘하는 것은 높게 평가해야 한다.

다만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재능 있는 젊은 선수의 개성이 과도하게 분출돼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월드컵은 변수가 많고 경험해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긴장감이 있다. 오로지 자신감과 욕심으로만 되는 무대가 아니다. 나 역시 1998 프랑스 월드컵을 경험한 뒤 2002 한·일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당시 처음 월드컵에 출전하는 후배들과 이런 점에 대해 자주 대화를 나눈 기억이 있다. 절대적으로 월드컵은 ‘팀’을 우선해야 하고 그 속에서 개성이 드러나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상철
1998프랑스 월드컵 벨기에전 득점포 장면.

유례없는 부상자 속출로 플랜A 퍼즐이 깨진 상황에서 승우를 비롯해 신 감독이 야심 차게 발탁한 젊은 선수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이들이 진정으로 월드컵에서 빛나려면 의지할 수 있고 팀으로 묶어줄 선배의 존재가 필요하다. 그 중심엔 기성용과 이청용이 있다. 둘은 2010 남아공, 2014 브라질 대회에 이어 세 번째로 월드컵에 참가한다. 이미 이들은 아무리 유럽 빅리그에서 잘했어도 월드컵은 또 다른 무대라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경기력을 발휘하는 것 못지않게 두려움과 긴장감을 느낄 후배들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고 팀에 녹아들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오히려 너무나 이를 잘 알기에 기성용, 이청용의 부담이 어느 때보다 클 수도 있다. 팀을 생각하되, 자신이 지향하는 러시아 월드컵을 먼저 떠올려보라고 두 사람에게 얘기해주고 싶다.

유상철

기성용, 이청용은 이번 월드컵이 스스로 마지막이라고 여기고 있다. 나도 2002 한·일 대회를 그런 마음으로 맞았는데 끝나고 난 뒤 ‘아, 왜 그땐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밀려왔다. 너무 성적에 신경쓰면서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이미 월드컵의 특징을 잘 알고 있다. 받아들여야 하는 스트레스를 즐길 수 있는 경험이 생겼다고 본다. 어느 때보다 마음을 편하게 가졌으면 좋겠다. 스스로 어떻게 후회 없는 월드컵을 보낼 것인지 이미지트레이닝을 하면 의외로 성적을 떠나 유쾌한 월드컵이 될 수도 있다. 평가전까지 팀을 생각하면서 긴장감을 느끼더라도 막상 러시아 땅에 도착했을 땐 즐겼으면 한다. 자신이 걸어온 경험과 커리어를 믿기를 바란다. 그런 모습은 후배들에게도 엄청난 용기가 된다. 긴장을 풀고 자신의 재능을 100% 이상 발휘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전남드래곤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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