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호
NC 다이노스 전준호 주루 코치. 사진 | 스포츠서울 DB

[스포츠서울 이지은기자]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뛰어놓을 걸 그랬나 봐요.”

2009년 9월 25일 광주 무등구장에서 상대 팀의 2루 베이스를 뽑아든 사나이가 있었다. 당시 히어로즈 소속이던 ‘대도’ NC 전준호(51) 작전·주루 코치였다. 이미 직전 시즌 기록으로만 해도 압도적인 도루 통산 1위였지만, 현역 마지막 해 기어이 2개를 더하며 ‘550도루’를 완성했다. KIA 더그아웃에서도 박수를 보냈던 이 대기록은 무려 11년째 깨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올해로 전 코치의 기록은 549개로 줄었다. 전 코치가 롯데 소속이던 1996년 9월 20일 해태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기록된 도루를 KBO 사무국이 교체 출전한 박종일의 것으로 정정했기 떄문이다. “일부러 딱 맞아떨어지게 만들었던 기록이다. 알았으면 하나 더 뛰었을 것”이라고 웃던 전 코치는 “기록을 수작업으로 하다가 디지털로 바꾸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지나간 과거니 숫자 하나에 크게 연연하진 않는다. 상징적인 것은 달라지겠지만 정확히 기재돼야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이어 “내 기록이 은퇴하고도 이렇게 오래 유지될 줄 몰랐다. 빨리 경신해서 더 단단한 기록을 세워주는 후배가 나왔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전준호
현역 시절 도루를 시도하고 있는 전준호 코치. 사진 | 스포츠서울 DB

◇“빅볼 야구 대세지만…” 그래도 도루가 가치 있는 이유

최근 KBO리그가 ‘빅볼 야구’로 변모한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공인구 반발력이 크다 보니 선수들이 원하는 타격 각도만 유지하면 장타를 만들기가 수월했다. 프리에이전트(FA) 대박을 위해서도 부상 위험이 따르는 도루보다는 홈런처럼 눈에 보이는 성과를 늘리는 게 유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변곡점이 찾아왔다. FA 시장 한파는 매해 심해지고 있고 저반발 공인구 사용도 2년 차를 맞는다. 전 코치는 “리그가 현대 야구로 변하는 과정에서 도루의 가치가 떨어진 게 사실이다. 과거 이종범 코치와 제가 라이벌 구도를 만들며 팬들에게 볼거리도 제공하지 않았나. 요즘은 독주 체제가 되다 보니 이런 재미가 떨어진 것도 아쉽다”면서도 “앞으로가 문제다. 점수가 덜 나게 되면 득점권에서 누상에 주자를 가져다 놓는 게 중요해진다. 1점 차 야구에서는 기동력이 필요하다”는 말로 ‘도루의 시대’를 예고했다.

전 코치는 창단팀이었던 NC가 첫해 7위를 하고도 이듬해부터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등 리그에 연착륙할 수 있었던 힘도 ‘기동력 야구’에서 찾았다. 그는 “빠른 선수들이 활발히 뛴 게 NC의 팀 컬러가 됐다. 2015년에는 박민우, 김종호, 테임즈까지 40도루를 기록한 선수가 3명이나 됐고, 팀 200도루도 달성했다”며 “팀에 뛸 수 있는 선수가 4명 이상 포진하면 상대 투수를 굉장히 압박한다. 주자가 언제든 2루를 갈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아무래도 배터리의 볼 배합이 단순해진다. 이는 타자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도루는 투수가 강한 강팀을 약팀이 이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포토]NC 전준호 코치,
NC 박민우(왼쪽)와 전준호 코치. 사진 | 스포츠서울 DB

◇“후배들아, 내 기록 넘어라…800·1000도루도 가능”

현역 시절 전 코치는 1991년부터 2008년까지 18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로 ‘대도’의 기록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대형, 정수근(이상 은퇴) 등 정도의 후배들 이후 이젠 그 명맥도 끊긴 상태다. 현역 중 최다 도루를 노려볼 만한 박해민(삼성)이 248개에 그친다. 전 코치는 “난 대학도 졸업하고 군대도 다녀왔고, 시즌 126경기를 하던 시대에 야구를 했다. 현재 144경기 체제에서 고졸 선수들은 훨씬 더 좋은 기록을 남길 수 있다. 800개는 물론, 1000개까지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며 “리그가 더 건강해지고 강해지려면 내 기록을 경신하는 선수들이 빨리 나와야 한다. 그런 선수를 잘 길러야 하는 내 책임이기도 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제자 박민우는 전 코치가 “각별히 애착이 갔었다”고 고백하는 후배다. 19년 선수 생활의 흔적을 자신이 가르친 선수가 깨줬으면 했지만, 최근 몇 년간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후 도루 페이스가 급감했다. 채승민, 박영빈 등 유망주들도 발이 빠르지만 도루왕을 노리기 위해서는 주전을 꿰차는 게 먼저다. 전 코치는 자신의 ‘도루론’을 끝으로 다시 한 번 후배들의 등장을 고대했다. “누군가에게 도루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난 항상 같은 답변을 해왔다. 스타트는 도루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상대 팀의 미세한 움직임을 잘 간파하고, 투수와 싸움을 잘해야 한다. 도루는 발이 아닌 눈으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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