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대구=윤세호기자] 경험이 쌓이며 약점을 지워나간다. 전반기보다 후반기에 유독 고전했던 모습, 갑자기 제구 난조에 빠지며 허무하게 볼넷을 범했던 모습은 이미 지난 일이 됐다. 팀이 어려운 시즌을 보내고 있어도 늘 팀이 승리할 수 있는 경기를 만든다. 4년 전 입단 당시 앳된 왕자에서 이제는 왕으로 늠름하게 성장한 삼성 에이스 원태인(23) 얘기다.

원태인이 선발 등판하는 경기라면 어느 투수와 붙어도 두렵지 않다. 그만큼 꾸준하다. 16일 기준 퀄리티스타트(QS: 선발 6이닝 이상·3자책점 이하) 부문에서 14개로 리그 공동 5위. 121이닝으로 이닝 부문 8위에 이름을 올렸다. 5승 6패로 승리보다 패배가 많지만 흔들리지 않는다. 시즌 끝까지 버틸 것을 다짐했고 꾸준하기 위해 다른 팀 에이스 투수에게도 조언을 구했다.

원태인은 지난 16일 올시즌 좀처럼 승수를 쌓지 못하는 것에 대해 “승리에 대한 욕심을 좀 내려놓은 것 같다. 물론 10승을 하면 좋고 하고도 싶지만 선발 투수의 승리는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올시즌에 또 알게 됐다”며 “대신 QS는 꾸준히 하고 싶다. 코치님, (강)민호 형과도 QS는 계속 이어가자고 다짐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대구 LG전에서 원태인의 마음가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1회부터 2점을 내줬고 상대 선발 투수가 에이스 아담 플럿코였으나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2회부터 6회까지 무실점 행진을 벌였다. 삼성 타선은 원태인의 호투에 응답하듯 6회 4점을 뽑았다.

당시 상황에 대해 “솔직히 1회에 2점을 내줄 때에는 큰일이다 싶었다. 그래서 일단 상대가 잘 치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고 너무 힘으로 붙기보다는 변화구를 많이 쓰면서 가기로 민호 형과 얘기했다. 욕심내지 않고 맞으면서 잡자는 생각으로 던졌는데 이게 잘 먹힌 것 같다”고 돌아봤다.

2회부터 변화구의 비중을 높인 원태인이지만 볼넷은 없었다. 목표점을 QS로 잡으면서 선발 투수의 길을 알게 됐고 그 길을 걷기 위해서는 볼넷은 절대 피해야 함을 깨달았다.

원태인은 “날씨가 더운데 볼넷까지 하면 수비 시간이 길어지고 야수들도 애를 먹는다. 이를 생각해 정말 볼넷만은 피하자는 마음으로 던지고 있다. 야수들도 내가 볼넷을 잘 안 주니까 좋아하는 게 느껴진다”면서 “(고)영표 형에게 QS에 대한 조언을 많이 구했다. 영표 형의 경우 볼넷이 거의 없는 투수인데 영표 형을 보면서 첫 번째로 피해야 하는 게 볼넷임을 다시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완벽한 답은 없다. 볼넷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타자와 승부했고 그 과정에서 홈런을 내줄 때도 있다. 그래도 지금 선택한 이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원태인은 “너무 안 맞으려고 하면서 볼넷을 범하는 것보다 그냥 홈런 맞고 투구수를 줄이고 이닝을 길게 가는 게 바르다고 생각한다. 물론 현재 피홈런 1위가 되기는 했지만 올시즌 정한 방향이 이닝과 QS니까 여기에 집중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내년부터는 피홈런도 줄일 수 있게 또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홈런을 맞더라도 주자가 없다면 1실점에 불과하다. 원태인 외에 두산 라울 알칸타라, 한화 펠릭스 페냐 등 에이스 투수들도 두 자릿수 홈런을 맞고 있다. 볼넷으로 투구수가 늘고 주자를 쌓아 위기를 자초하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승부하며 볼넷을 피하고 이닝을 더 소화하는 게 선발 투수가 걸어야 할 길이다.

자신을 괴롭히곤 했던 후반기 징크스도 지워나간다. 원태인은 후반기에도 뛰어난 구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두고 “이제는 후반기에 떨어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루틴에 충실하고 루틴에서 사소한 것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웨이트하면서 힘을 유지하고 힘을 유지하면 밸런스도 꾸준히 잡힌다. 투구 밸런스만 유지하면 구위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설명했다.

유독 긴 시즌이다. 시즌 전에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그리고 시즌 막바지에는 항저우 아시안게임(AG)에 출전한다. 두 번이나 국제 대회를 치르는 강행군인데 AG에서는 대표팀 선발진의 핵심 구실을 할 전망이다.

원태인은 “아직 대표팀에 대해 크게 의식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AG에 나가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체력 관리와 구위 유지에 신경 쓰고 있다. 지금 나는 삼성 소속이고 시즌을 치르는 선발 투수니까 매 경기 좋은 컨디션과 구위를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러면 AG에서도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다짐했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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