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용일기자] 경이로운 공간 창출과 속도, 골 결정력이다.

축구국가대표팀이자 토트넘의 ‘캡틴’ 손흥민(31)이 올 시즌 처음으로 최전방 원톱을 소화한 가운데 해트트릭(3골)을 쏘아 올렸다. 9월 유럽 원정 A매치 2연전(웨일스·사우디아라비아)을 대비하는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도 함박웃음을 지을만하다.

손흥민은 3일(이하 한국시간) 영국 번리에 있는 터프 무어 스타디움에서 끝난 2023~2024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4라운드 번리와 원정 경기에 원톱으로 선발 출격해 3골을 집어넣으며 팀의 5-2 대승을 견인했다. 리그 1~3호 골을 동시에 쏟아낸 그의 대활약으로 토트넘은 개막 이후 4연속 무패(3승1무·승점 10) 가도를 달리며 선두권 경쟁을 이어갔다.

손흥민은 2019~2020시즌인 2019년 12월 번리를 상대로 70m 단독 드리블 후 원더골을 터뜨리며 그해 푸스카스상을 품은 좋은 기억이 있다. 이번에도 번리를 두드리며 ‘천적’으로 떠올랐다.

EPL 통산 4번째 해트트릭이다. 그는 2020~2021시즌이던 지난 2020년 9월20일 사우샘프턴 원정(5-2 승)에서 4골을 넣으며 첫 해트트릭을 해낸 적이 있다. 이후 애스턴 빌라(2022년 4월10일·원정·4-0 승), 레스터 시티(2022년 9월18일·홈·6-2 승), 이날 경기까지 4시즌 연속으로 해트트릭 경기를 만들어냈다. 특히 9월에만 세 번이나 해트트릭 원맨쇼를 펼쳤다.

또 이날 EPL 통산 104~106호 골을 달성하면서 ‘우상’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103골), 디디에 드로그바(104골)를 제치고 대런 벤트(106골)와 이 부문 공동 31위에 자리했다. 영국 ‘풋볼 런던’은 경기 직후 손흥민에게 평점 10점 만점을 매겼으며, 축구 통계업체 ‘풋몹’은 9.6점을 줘 양 팀 선수 통틀어 유일하게 9점 이상을 줬다. 당연한 결과였다.

올 시즌 토트넘의 주장 완장을 단 손흥민은 앞서 3경기에서는 왼쪽 윙어로 뛰면서 해결사 노릇을 하기보다 조력자로 뛰었다. 해리 케인(바이에른 뮌헨)이 떠난 최전방 원톱은 브라질 국가대표 히샬리송이 맡았다. 그러나 그가 크게 부진하면서 과거 케인이 부상 등으로 빠졌을 때 공백을 메운 손흥민을 전진 배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앙제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실제 번리전에서 히샬리송을 벤치에 앉히고 손흥민 원톱 카드를 꺼내들었다.

번리는 전진 수비를 즐기는 팀이다. 빠른 발로 상대 뒷공간을 두드리고 정확한 슛 임팩트를 지닌 손흥민의 장점을 더욱더 살리려는 의도도 담겼다. 결과적으로 100% 성공. 토트넘은 전반 4분 라일 포스터에게 선제골을 내줬다. 그러나 12분 뒤 손흥민이 후방 긴 패스를 이어받아 왼쪽 윙어로 나선 마노르 솔로몬과 패스를 주고받은 뒤 전진한 골키퍼를 보고 오른발 칩슛으로 동점골을 넣었다. 크리스티안 로메로, 제임스 메디슨의 연속골을 앞세워 3-1로 앞선 후반 18분에도 왼쪽 측면에서 솔로몬이 중앙으로 내준 공을 오른발을 갖다 대 골망을 흔들었다. 3분 뒤엔 페드로 포로의 침투 패스 때 번리 수비진 뒤를 재빠르게 파고들어 공을 제어한 뒤 페널티에어리어 왼쪽에서 강력한 슛으로 마무리,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그는 유효 슛 3개를 모두 골로 연결했다. 골 냄새를 맡는 것처럼 슛 공간을 창출해 내고, 빠른 발로 뛰면서 완벽한 골 결정력까지. 손흥민이 벤치에 앉은 히샬리송에게 ‘골은 이렇게 넣는 것’임을 증명한 경기였다.

손흥민은 이 기세를 대표팀으로 옮긴다. ‘클린스만호’는 오는 8일 오전 3시45분 영국 웨일스 카디프시티 스타디움에서 웨일스를 상대하고 13일 오전 1시30분엔 영국 뉴캐슬로 이동해 사우디아라비아와 격돌한다. 4일 인천국제공항에서 K리거 9명이 출국하는 가운데 손흥민 등 유럽파 태극전사는 현지에서 합류한다.

한국 사령탑 부임 이후 4경기째(2무2패) 승리가 없는 클린스만 감독은 잦은 해외 출장 등으로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 있다. 이번 원정 2연전 결과가 매우 중요한데, 앞서 소집 명단 최전방 공격수에 기존 멤버인 조규성(미트윌란) 황의조(노리치시티) 오현규(셀틱)를 발탁했다.

다만 조규성과 오현규는 각각 햄스트링, 종아리 부상을 입었다. 조규성은 최근 복귀전을 치렀으나 리스크를 안고 있다. 황의조는 원소속팀 노팅엄 포리스트 경쟁 구도에서 밀려나 1경기도 뛰지 못했고 A매치 소집 직전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 노리치로 임대 이적했다. 그러나 데뷔전은 아직 치르지 못해 실전 감각에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클린스만 감독은 기존 스트라이커를 믿고 뽑았는데, 손흥민의 최전방 기용 가능성을 염두에 둔 선택으로 보는 이가 있다. 보란 듯이 그가 A매치 소집 직전 번리전에서 ‘스트라이커 SON’의 면모를 뽐내면서 클린스만 감독에게 강력한 영감을 안겼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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