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윤세호기자] 일당백이었다. 마운드가 특히 그랬다.

역대 최강 마운드를 자랑하는 팀에 맞서 실질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투수가 선발 3명, 중간 3명뿐이었다. 그래도 치열했다. 수비 실책이 아니었다면 승부를 마지막 7차전으로 끌고 갈 수 있었다. 9년 전. 넥센과 삼성의 2014 한국시리즈(KS)가 그랬다.

이제는 정반대다. 실질적인 마운드 가용 자원이 당시보다 두 배 이상 많다. 마운드 뎁스를 앞세워 페넌트레이스 결승점을 가장 먼저 통과했고 KS 승리도 바라본다. 9년 전 아쉬움을 풀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LG 염경엽 감독이 사령탑으로서 첫 KS 우승 반지, 그리고 팀의 29년 한을 풀기 위한 승리 방정식을 구성하고 있다.

마냥 순조롭지는 않다. 외국인 원투 펀치 한 축인 아담 플럿코가 전열에서 이탈했다. 그래도 넥센 사령탑으로서 정상 등극을 노렸던 9년 전보다는 훨씬 낫다고 봤다.

염 감독은 “9년 전에는 투수 6명으로도 해봤다. 지금은 훨씬 상황이 좋다”고 미소 지었다. 덧붙여 “당시는 어떻게든 7차전까지만 가자는 생각이었다. 7차전 밴헤켄이 나오니까 마지막까지 가면 승산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투수가 없었다. 타격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회상했다.

9년 전 정상 결전에서 삼성에 맞섰던 넥센은 3선발로 KS를 치렀다. 밴헤켄, 헨리 소사, 오주원이 로테이션을 이뤘다. 후반기 선발로 활약했던 문성현이 정상 컨디션을 찾지 못해 제대로 로테이션을 구축하지 못한 상태로 가을 야구 무대에 섰다.

불펜이 풍족한 것도 아니었다. 마무리 손승락, 손승락 앞에 자리한 한현희와 조상우를 향한 의존도가 높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도 히어로즈는 뎁스가 강한 팀이 아니었다. 핵심 선수 몇 명과 다른 선수의 기량 차이가 컸다.

박병호, 강정호, 서건창, 이택근, 유한준, 김민성 등 강타자가 많았는데 이는 삼성도 마찬가지였다. 최전성기였던 최형우, 박석민, 채태인에 건재한 이승엽과 역대급 2루수였던 나바로, 89도루를 합작한 김상수와 박해민 등 짜임새는 한 수 위였다.

5인 로테이션이 굳건해 선발 한 명을 불펜으로 돌릴 여유가 있었다. 배영수가 불펜에 합류했고 기존 불펜에는 임창용, 안지만, 차우찬, 권혁 등이 필승조로 활약했다. 무엇보다 당시 삼성 선수단에는 우승 경험에 따른 여유와 집중력이 있었다.

이제는 반대다. LG의 KS 파트너가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2023년의 LG는 2014년 삼성만큼 뎁스가 뛰어나다. 1번부터 9번까지 짜임새 있는 타선을 자랑하며 마운드 가용 자원도 두둑하다. 정규시즌 팀 타율(0.279), 팀 OPS(0.755), 팀 평균자책점(3.67) 모두 1위다.

아쉬운 부분도 있다. 구원 평균자책점 3.43으로 1위에 올랐는데 선발 평균자책점은 3.92로 5위다. 숫자만 보면 플럿코 부재가 아쉬울 수 있다.

그러나 염 감독은 더 큰 위험 요소를 차단하는 데에 집중했다. 플럿코가 지난해 단 한 번의 실전도 없이 포스트시즌에 선발 등판했다가 무너진 것을 머릿속에 넣었다. 정규시즌 개막을 앞두고도 4, 5번의 실전을 치른다. 충분한 실전 없이 KS에 등판했다가는 1년 전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 또다시 플럿코에게 끌려가 선발진이 무너지는 것보다는 플럿코 리스크를 지운 채 KS를 준비하고 마운드 구성을 완료 짓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청사진도 어느 정도 완성됐다. 케이시 켈리, 최원태, 임찬규 세 명이 KS 로테이션에 포함된다. 오는 19일부터 이천에서 진행하는 합숙 훈련을 통해 이정용과 김윤식 중 한 명이 선발, 다른 한 명은 불펜으로 간다. 고우석, 김진성, 함덕주, 백승현, 유영찬, 정우영이 불펜 필승조를 이룬다.

포스트시즌이 연장 15회까지 진행되는 점을 고려해 이우찬, 최동환 등 멀티이닝이 가능한 투수를 더 하면 KS 무대에 오를 투수 13명이 확정된다. 투수 엔트리를 14명으로 구성한다고 가정했을 때 남은 한 자리를 두고 박명근, 손주영, 이지강, 이상영 등이 경쟁하게 된다. 염 감독은 투수 엔트리 14번째 자리에 대해 “투수는 13명이면 충분하다. 14번째는 KS 분위기를 경험시키는 자리가 될 것이다. 미래 우리 팀에서 활약할 투수에게 동기 부여를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올시즌 86승을 올린 LG는 42번의 역전승을 이뤘다. 선취득점시 승률(0.711)도 1위지만 선제실점시 승률(0.485)도 1위다. 연장 승률 또한 0.750으로 1위. 강한 타선과 불펜진이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경기 흐름을 만들고 승리를 완성했다.

염 감독은 9년 전 KS 6차전이 열린 잠실구장에서 패배와 함께 눈물을 쏟았다. 2021년과 2022년 2년 공백기 동안 여러 차례 당시 경기들을 돌려보며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이번에 비로소 기회가 왔다. 양질의 마운드를 완벽하게 활용한다면, 9년 전 아픔의 눈물이 기쁨의 눈물로 바뀔 것이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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