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도쿄(일본)=정하은기자] “아, 내 사랑은 남풍을 타고 달려가네/ 아, 푸른 바람 가르며 달려라, 저 섬으로~”

지난 달 26일 오후 일본 도쿄돔. 스트라이프 티셔츠에 흰색 롱스커트를 입은 하니가 “와타시노 코이와 미나미노 카제니 놋테 하시루와”라는 첫소절을 부르는 순간, 거대한 함성의 물결이 몰아쳤다. 객석 곳곳에서 “어이! 어이!” 추임새가 들려왔다. 뉴진스와 협업한 일본 현대미술가 무라카미 다카시가 덩실덩실 춤추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하니가 부른 곡은 1980년대 일본 대중음악계를 강타한 일본 국민 아이돌 마쓰다 세이코의 대표곡 ‘푸른 산호초(青い珊瑚礁)’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후반 사랑받은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에 삽입돼 40대 이상 중 이 곡을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뉴진스는 공연하는 국가에서 가장 사랑받았던 대중가요를 선곡하며 현지 팬들에 대한 예의를 표했다.

데뷔 1년 11개월만에 팬미팅 ‘버니즈 캠프 2024 도쿄돔’을 통해 일본 공연계의 심장부 도쿄돔을 점령한 뉴진스의 열도 입성기에 K팝 관계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자국 콘서트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아시아 최대 공연장으로 직행해 성공한 전무후무한 사례다. 전세계 팝시장 2위에 달하는 일본시장을 점령한만큼 월드투어도 무난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 하니 ‘푸른산호초’에 뒤집어진 도쿄돔…日 9만 버니즈 ‘떼창’

뉴진스는 하루 4만 5000명, 양일간 9만 1200명의 팬을 모았다. 평일행사임에도 전회차 티켓이 매진돼 공연 당일 시야제한석까지 풀었다. 뉴진스 공식팬덤 버니즈의 상징인 토끼 모양 야광봉 불빛이 도쿄돔을 밝혔다.

활동한지 채 2년이 안된 그룹이지만 지금까지 발표한 3장의 앨범에 수록된 12곡, 5·6월 공개한 신곡 4곡과 솔로 6곡까지 150분간 20여곡의 향연이 펼쳐졌다. 통상 저연차 K팝 그룹들이 콘서트에서 부를 곡이 없어 ‘커버곡’ 위주로 선곡하는 것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하이프보이’, ‘뉴진스’, ’슈퍼샤이’, ‘이티에이’, ‘오엠지’, ‘디토’ 등 히트곡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비교적 최근에 발매한 ‘버블검’, ‘라이트 나우’, ‘하우스위트’, ‘슈퍼내추럴’까지 관객들의 떼창을 자아냈다.

특히 일본 아티스트의 곡을 커버하거나 현지 아티스트와 협업한 무대가 돋보였다. 민지는 요즘 일본 신예 싱어송라이터 바운디의 히트곡 ‘무희’를 커버했고 혜인은 영국에서 활동 중인 일본 싱어송라이터 리나 사와야마와 듀엣 무대를 선보였다. 자국 대중문화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담은 무대에 열도가 들썩였다.

일본 오리콘뉴스는 “1980년대 아이돌 노래를 청량하게 부르고 환한 미소를 띠며 객석을 감미로운 분위기로 만들었다”며 “‘푸른 산호초’ 무대는 엑스(X)에서 일본뿐 아니라 한국 트렌드에도 오르며 반향을 일으켰다”고 보도했다.

◇ 커진 월드투어 기대감…민희진 대표 자신이 리스크

도쿄돔 입성을 성공리에 마친 뉴진스의 다음 행보는 ‘월드투어’가 될 전망이다. 현장에서 만난 어도어 민희진 대표 역시 “월드투어 하기 전에 확실히 감을 잡는데 좋은 무대”라며 “아쉬움도 있지만 이번 경험이 앞으로 월드투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민희진 대표 자신이 팀의 ‘리스크’라는 점은 불안요소로 남아있다. 일각에선 잠시 숨 고르기 중인 하이브가 뉴진스의 도쿄돔 팬미팅을 마친 뒤 민 대표와의 법적 분쟁에 다시 총력을 기울이지 않겠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국내 팬들의 원성도 적지 않다. 뉴진스의 국내 팬미팅은 지난해 7월 서울 SK핸드볼경기장에서 양일간 연 ‘버니즈 캠프’가 전부였다. 이후 1년 동안 한국에서 단독공연을 개최하지 않아 국내 팬들의 아쉬움을 샀다. 월드투어의 본격적인 닻을 올리기 전 한국 팬심을 먼저 들여다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도쿄돔 팬미팅으로 자신들의 가능성을 입증한 뉴진스가 여러 불안요소를 딛고 더 큰 세계로 날아오를 수 있을지 주목된다. jayee212@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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