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준

[스포츠서울 최진실기자]배우 이희준이 인상 깊은 연기를 또 한번 펼쳤다.

연극 무대부터 시작해 KBS2 ‘넝쿨째 굴러온 당신’, 영화 ‘해무’, ‘1987’, ‘미쓰백’ 등을 통해 강렬한 연기를 펼쳐온 이희준은 22일 개봉하는 영화 ‘남산의 부장들’(우민호 감독)로 변신을 선보였다.

1979년, 제2의 권력자라 불린 김규평(이병헌 분)이 대통령(이성민 분)을 암살하기 전 40일 간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에서 이희준은 경호실장 곽상천 역을 맡았다. 실존 인물 차지철을 모티프로 한 곽상천 캐릭터를 위해 25㎏의 체중을 증량하는 등 열정을 보인 이희준은 대통령을 향한 무조건적인 충성심을 가진 인물을 연기하며 새로운 얼굴을 그려냈다.

-실존 인물을 모티프로 한 캐릭터인 만큼 부담은 없었는지?

배우로서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심리적으로 전혀 이해가 안됐다. ‘나한테 왜 이런 역할이 왔지’ 싶었다. 모르는 것에 대한 흥분감도 있었다. 이 캐릭터는 무엇을 믿고 자랐고, 어떤 일을 겪어서 국가를 믿고, 하극상을 부리는 행동을 할까 이해하기 힘들었다. 관객도 믿어질 사람처럼 보이기 위한 구축 작업을 했다. 일상에서 이희준은 그런 사람이 있다면 말도 섞지 않을 것 같았지만, 영화가 끝나고 인물을 이해하고 애쓰려 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을 했다. 작품이 끝날 때마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시각이 넓어지는 것 같다.

-우민호 감독과 ‘마약왕’에 이어 재회하게 됐다. 캐스팅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는가?

감독님이 ‘마약왕’ 때 송강호 선배와의 촬영을 보고, 이병헌 선배와 붙어도 재밌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했다. ‘마약왕’ 촬영 당시, ‘남산의 부장들’이라 촬영하는 것이 있는데 진짜 멋있는 캐릭터라고 하셨다.(웃음) 이런 역할인 줄 몰랐다. 과격한 대사에 대해 너무 무자비하고,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지 고민도 했다.

-영화 속 실감나는 연기가 돋보였다. 애드리브가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한 글자의 애드리브도 없었다. 이병헌 선배와 싸우는 장면에서 대사도 정확하게 지켰다. 다들 그렇게 약속한 적은 없었지만, 조심스러웠다. 애드리브를 통해 캐릭터가 왜곡되지 않게 애쓰려 했다. “남산에서 돈가스. 헤헤”라는 부분도 대본에 있는데, 그것까지 지켜서 했다.

-영화를 위해 25㎏ 증량이 화제가 됐다.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멋있어 보이게 “배우로서 해야죠”라 말해야 하는데. 하하. 사실 쉽지 않았다. 찌우는 데 3개월이 걸렸고, 8~9개월 정도 촬영하며 1년을 100㎏으로 살았다. 의사 선생님께서 당뇨가 올 수도 있다고 했다. 겁도 많았고, 오래 살고 싶었다. 그래서 금방 감량했다. 감독님의 특별한 지시는 없었다. 대본을 봤는데, 대부분 윽박지르는 것이더라. 대사에서 뭔가 덩어리감이 느껴져서 증량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감독님께 얘기하니 “희준 씨 연기 보고 뽑았지”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중에는 스스로 찌겠다고 말할 줄 알았다더라. 무서운 사람이다.(웃음) 촬영을 하며 재밌는 신체적 가면을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987’이나 ‘미쓰백’ 같은 작품은 심리적 가면에 집중하려 했다면 이번 작품은 신체적 가면을 쓴 즐거움이 있었다.

-인생 최고 몸무게였나?

그렇다. 미세한 부분인데, 심리적으로 두려웠다. 배우를 하며 배는 나오지 않도록 유지하려는 것이 10년은 넘었다. 머리로는 찌워보자고 했는데 갑자기 배가 나오니 엄청 거부감이 들더라. 먹지 않아도 구토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심리적 허락의 과정이 있었다. 괜찮다고 하고, 그 다음부터 소화를 시켰다. 헬스 코치님과 함께 웨이트를 하고, 식사 사이 땅콩 잼을 잔뜩 바른 토스트를 먹었다. 밤마다 치킨과 맥주를 먹었다. 배우를 하고 죄책감 없이 마음껏 먹은 것은 처음이었다.

-촬영을 마친 후 다시 감량했는데, 증량과 감량 중 어떤 것이 더 어려웠을까?

감량이 훨씬 어렵다. 늘어난 위와 식욕을 갑자기 절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3개월 만에 감량했는데 헬스장 바로 앞 고시원을 보름 동안 끊어서 하루에 네번씩 운동을 했다. 닭가슴살과 고구마를 먹으며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스물한 살 때 화학공학과를 그만두고,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연극을 하겠다고 고시원에서 1년을 산 적이 있었다. 그리고 20년 뒤 자발적으로 고시원에 오게 됐다. 그 20년이 필름처럼 쑥 지나갔다. 한예종에 들어가고, 극단 차이무에 들어간 뒤 PD님께 발탁돼 단막극에 출연하고 그것을 본 박지은 작가님의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 출연하고, 류승완 감독님이 작품을 보시고 ‘부당거래’에 캐스팅 해주시고. 감사한 분들이 생각나고 인생 자체가 고마운 분들 밖에 없다는 것이 생각나고 눈물이 났었다. 가진 것들에 감사했다.

이희준
배우 이희준. 사진 | 쇼박스 제공
-‘남산의 부장들’에서 연기를 하며 어떤 점에 집중했나?

울림도 커졌고, 다른 선배님들이 예리한 칼날 같은 연기를 했다면 저는 큰 통나무 같은 연기였다. 불안하기도 했다. 우리는 두, 세가지 뜻을 말하는데 한가지 뜻만 말해 집에 갈 때는 이렇게 해도 되나 싶었다. 더 해야 하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중후반부로 가며 이렇게 해야 하는 연기라고 느꼈다. 만약 캐릭터가 의문스러운 서브 텍스트가 있었다면 너무 달라졌을 것 같다. 그 안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던 것 같다.

-힘들었던 신이 있었는지?

힘든 순간 보다는 좋은 선배들과 연기하니 재밌는 긴장감의 순간이었다. 마지막 총을 쏘는 장면은 한번에 진행됐는데, 아주 공을 들였다. 며칠 동안 리허설을 했다. 한국 영화의 명장면이 되겠다 생각했다. 모든 것이 고증을 통해 준비됐다. 이렇게 모든 스태프가 몰입해서 한 것이 너무 재밌었다.

-함께 등장했던 전두혁 역의 서현우도 인상적이었다.

학교 후배인데 졸업하고 처음으로 한 작품에 출연한 것이었다. 너무 잘했다. 마지막 장면은 정말 섬뜩했다. 대사는 한, 두마디지만 그 안에 여러가지를 고민하고 애썼다고 생각했다. 저는 살을 찌웠는데, 그 친구는 면도기로 머리를 밀었다. 훨씬 심리적 고통이 컸을 것이다. 그 친구가 약간이라도 들뜨게 연기를 하고 가벼웠다면 달랐을텐데 정말 잘 했다.

-이병헌, 이성민, 곽도원이라는 연기 대가들과 함께 하며 배운 점이 있었는지?

모두 빨아먹고 싶더라. 하하. 소화가 안 될 정도로. 감탄을 많이 했다. 곽도원 선배도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 불안감을 어떻게 그렇게 표현하는지. 톡톡 튀더라. 이병헌 선배도 놀랐다더라. 불안함 뿐 아니라 생생한 그 연기가 있고, 곽도원 선배만의 매력이다. 이성민 선배도 심리적, 신체적으로 지쳐가는 얼굴을 표현하는 연기에 대해 깜짝 놀랐다. 이병헌 선배는 그냥 너무 좋았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좋으시더라.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이희준에게 있어 ‘남산의 부장들’은 어떤 의미로 남는 작품이 될까?

개인적으로 무언가 자기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 사람을 봤을 때, 거부감 보다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군요’라는 자세, 변화된 태도를 갖게 됐다. 연기나 영화에 대해 이래야 한다는 생각이 틀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옳고 그른 것이 없고, 그것은 각자 정하는 것이라는 것을 영화를 통해 얻게 된 소득이다. 곽상천을 가슴을 던져 이해해 본 다음에 얻은 소감이다.

true@sportsseoul.com

사진 | 쇼박스 제공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