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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25일 일본 요코하마 닛산 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과 A매치 평가전에서 0-3으로 완패한 뒤 쓸쓸하게 그라운드를 떠나고 있다. 제공 | 대한축구협회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지난 한·일전 대패 수모 속 가장 많은 비판이 쏟아진 건 ‘0-3 스코어’가 아니다. 이상하리만큼 무기력하고 투쟁심이 실종된 선수들의 경기 자세였다. 한·일전이 국내에서 ‘흥행 보증수표’로 자리매김한 데엔 양국의 역사적 배경과 더불어 강한 투혼, 정신력이 동반된 태극전사의 플레이가 작용했다. 흔히 머리에 피가 나도 붕대를 감고 상대를 무력화하며 승리를 쟁취하는 게 모두가 기억하는 한·일전이다.

역사적으로 한국 축구는 우월한 피지컬을 앞세워 ‘아기자기한 축구’를 선호하는 일본을 압도했다. 연령대를 막론하고 일본을 만나면 의도적으로 강한 몸싸움과 압박으로 상대 장점을 제어했다. 일본이 한국을 상대할 때 가장 두려워하는 점이다. 그러나 이번에 대표팀은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우선 전략적으로 전방부터 강한 압박으로 공수 전환을 빠르게 한 일본 전략에 말려들었다. 그러나 전략적 패배로만 해석하기엔 경기 자세가 소극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단 1장의 경고를 받지 않은 지표가 이를 대변한다. 그간 강하게 몸싸움을 걸며 일본을 몰아친 경기에서는 옐로카드가 여러 장 나왔다. 물론 축구에서 옐로카드를 받는 게 좋은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라이벌전에서 단 1장도 나오지 않았다는 건 소극적으로 경기에 임했다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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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축구대표팀이 25일 일본 요코하마 닛산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득점 후 기뻐하고 있다. 제공 | 대한축구협회

이번 한·일전에서 나온 선수의 경기 자세를 두고 다수 축구인이 여러 목소리를 내고 있다. 1990년대 스타 플레이어로 활약한 A는 “한·일전이라고 해서 흔히 말하는 ‘헝그리 정신’으로 투쟁심을 요구하는 건 요즘 세대에 맞지 않다. 실제 헝그리하지도 않고, 일본을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당시 A와 대표팀 동료를 지낸 B도 비슷한 견해를 내놓으면서 “경기에 따라 포지션별 세부적인 역할을 맡기고, 책임을 부여하는 리더십이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반면 또다른 축구인 C는 “시대는 바뀌었지만 한·일전의 의미는 변하지 않았다고 본다. 양국 선수 뿐 아니라 국민 누구나 라이벌인 것을 알지 않느냐. 그러면 최소한 대표 선수로 자존심을 지키려는 경기 자세는 갖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프로 유스 팀을 맡은 D감독은 한국이 일본보다 피지컬과 정신력이 여전히 우월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는 “몇년 전 국제 대회에서 일본과 경기하는데, 우리 수비수가 위험하게 발을 들었는데도 일본 선수가 머리를 집어넣으며 골 집념을 발휘한 기억이 난다”며 “과거 일본은 예쁘게 공 찬다는 인식이 강했으나 이젠 어린 선수부터 강한 경기 자세를 품고 있다. 피지컬도 밀리지 않는다. 우리가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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