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순
선수시절 두산 김태형(왼쪽) 감독과 박철순. 스포츠서울DB

[스포츠서울 | 잠실=최민우기자] “내가 한참 선배인데 째려보면서 욕하고 그랬다니까.”

박철순(68)은 베어스를 넘어 KBO리그를 대표하는 레전드다. 프로 원년인 1982년 OB(현 두산)에 입단한 그는 13년 동안 마운드에 섰고, 231경기에서 76승 53패 20세이브 평균자책점 2.95를 기록하며 한국 야구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선수 생활 내내 부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박철순의 모습을 바라본 팬들은 ‘불사조’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리그 최고의 투수와 함께 베어스는 1982년 원년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박철순은 은퇴 시즌이던 1995년 팀을 정상에 올려놓으며 화려하게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 한화의 시범경기에 시구자로 나선 박철순은 “정말 감회가 새롭다.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설 때와 같은 설렘이 가득하다. 원년 우승과 1995년 은퇴할 때 우승했던 게 정말 기억에 남는다”며 회사에 잠겼다. 그러면서 프리에이전트(FA) 이탈로 전력이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는 두산을 향해 “기본기가 튼실한 팀이다. 프런트도 선수 관리와 수급을 정말 잘한다. 또 든든한 김태형 감독이 있지 않나. 잘 모르겠지만, 올해도 좋은 성적을 거두리라 믿는다”며 힘을 실어줬다.

김태형
선수 시절 두산 김태형 감독. 스포츠서울DB

레전드의 굳은 믿음에는 김태형 감독이 자리한다. 선수 시절부터 지근거리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박철순은 김 감독과 특별한 인연도 소개했다. 김태형은 1990년 OB에 입단했고, 선참이던 박철순과 같은 방을 썼다. 박철순에게 후배 김태형은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 박철순은 “김태형은 내가 선수 생활 말년에 입단했다. 그때도 리더십이 대단했다. 소주 한잔 나누면서, ‘너는 정말 좋은 리더가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 그렇게 됐다. 포수로서 리드도 잘했지만 포용력이 뛰어났다”며 좋았던 기억을 소개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박철순은 김 감독과 배터리 호흡을 맞추며 좋은 기억을 이어갔다. 까마득한 후배지만 김 감독은 선수 생활 황혼기를 맞은 선배 박철순을 리드했다. 때로는 막내의 당돌함에 선후배 장벽이 무너지기도 했다. 박철순은 “나이 먹고 힘들어할 때, 김 감독에게 내가 한참 선배인데도 째려보면서 욕도 하고 그랬다. 그때가 마흔한 살이었는데, 투수면 진짜 고령인거다. 힘들어서 사구를 남발했고 (체력이 떨어져) 죽겠는데, 마스크를 벗고 마운드에 올라오더니 ‘던지기 싫어요?’이러더라. 사실 선배한테 ‘몸이 안 좋으세요?’라고 묻는게 정상 아니냐. 나도 김태형의 말을 듣고 ‘아니야…’라고 답했다. 기분이 나쁜 것보다 투수가 포수한테 미안한 심정이 더 컸다”며 당시를 생생하게 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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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김태형(가운데) 감독과 박철순이 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화와 개막전을 앞두고 구단 사무실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제공=두산 베어스

사회 초년생 때부터 리더 기질을 보였던 김 감독은 8년째 두산 지휘봉을 잡고 있다. 그동안 매년 선수 이탈로 전력이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대업을 이뤄냈다. 그 중심에는 사령탑의 리더십이 자리했다. 올해 역시 ‘위기’라는 말이 나오지만, 레전드도 후배 감독의 리더십을 믿는다.

miru0424@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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