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사 하는 박보균 신임 문체부 장관
문화체육관광부 박보균 신임 장관이 지난 16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세종 | 연합뉴스

[스포츠서울 | 장강훈기자] “스포츠 관련 정책은 정교하게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정부의 초대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보균(68) 신임장관이 취임사에서 밝힌 스포츠에 관한 견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없앤 동대문구장을 언급하며 ‘디자인 플라자가 생기면서 없어진 스포츠 단지(동대문구장)를 지날 때면 고교야구와 축구 경기장의 응원 함성이 귓전을 울리는 듯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포츠 영웅의 감동 드라마에 정책 담당자들은 친숙해야 한다. 스포츠의 지평은 끊임없이 넓어지고, 국민 관심 영역은 커졌다. 스포츠 정책은 정교하게 진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 문장은 신임 문체부 장관의 취임사에 스포츠가 언급된 유일한 단락이다. 60~70년대 절정의 인기를 달리던 고교야구의 함성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스포츠에 대한 단상이 50년 전에 머물러 있다면 문제다. 지금은 하루 사이로 세상이 바뀌는 2020년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불거진 이른바 ‘국정농단 파문’은 승마와 동계스포츠에서 시작했다. 엘리트와 생활체육의 강제 병합, 학생선수에 대한 획일적 교육강요, 주말리그 도입으로 휴식권을 없애는 등의 조치는 한국 스포츠의 근간을 흔들었다.

정청래 의원 발언 자료 바라보는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문체부 박보균 장관이 1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진행 발언 자료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엘리트 선수들이 설 자리를 잃자 탁구와 핸드볼 등 대기업이 협회장으로 참여한 일부 종목은 프로화를 선언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했다. 종목간 양극화 현상이 심화할 수밖에 없는데, 체육정책은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문체부를 중심으로 교육부, 산업부, 과기부, 복지부 등이 머리를 맞대 ‘K-스포츠 시스템’을 정립하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다. 그 속에 폭력예방이나 엘리트-생활체육 상생, 국민 체력증진 등의 세부 과제를 포함하는 게 문체부가 할 일이다.

박 신임장관은 K-콘텐츠로 대표되는 한류를 기반으로 문화강국 위상을 지키겠다는데 취임사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스스로 문화와 정치, 문명과 역사, 언어와 리더십을 추적하고 해부했으며 고전 소설이나 역사적 문화공간 등에서 크고 작은 영감을 얻었다고 자평했다.

눈길을 끈 대목은 “부국강병, 즉 경제력과 군사력으로만 일류국가는 완성되지 않는다. 경제와 군사에다 문화가 번영해야만 일류국가로 우뚝 설 수 있다”고 선언한 대목이다.

추경안 제안설명하는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문체부 박보균 신임 장관이 1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추경안 제안 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화 예술 스포츠는 기본적으로 반전 메시지를 담고 있다. 문체부 장관이 굳이 ‘부국강병’을 언급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문화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경제·군사력만 부강한 나라를 뛰어넘는다는 강조의 의미로 보인다. 그만큼 문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기 위해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될 ‘부국강병’을 붙인 게 아닐까 부득이 긍정적으로 해석해본다.

그럼에도 박 신임 장관은 전두환 전 대통령 찬양, 친일 성향 등 각종 논란에 휩싸였다. ‘전두환식 리더십의 바탕은 의리’, ‘수호지 양산박 느낌이 풍긴다’는 칼럼을 썼고,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열린 일왕 생일파티에 참석했다. 또한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의 시민 의식을 높이 평가하며 반면 우리 시민의식은 남 탓하기와 떼 법의 억지와 선동이라며 국적을 의심케 하는 주장을 펼쳤다.

그런데 문체부는 어떤 정부 부처보다 정치적 중립성이 강조돼야 할 곳이다. 그 연장선에서 기대보다는 우려가 큰 게 사실이다. 문화체육관광분야를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해당 분야 종사자에게 돌아간다.

감시자인 언론인에서 감시를 받는 정치인이 됐으니,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 철저한 ‘을의 마인드’로 ‘갑’인 문화체육예술인이 각자 영역에서 기량을 발휘할 토양을 마련해야 한다. 더불어 번번이 실패한 스포츠 정책이 이번에야말로 ‘정치권력을 위한 정교함’으로 진화하지 않기를 바란다.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다면 한국 스포츠는 회생불능의 도탄에 빠질 수밖에 없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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