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빈 (4)

[스포츠서울 | 황혜정기자]

“어렸을 때부터 현장에 있을 때는 어른들께 칭찬받는 재미로 예의바르게 있었던 꼬맹이었던 것 같다. 현장 상황이 항상 최고는 아니었으니까 그 속에서 기다리고 인내하는 법을 깨닫고 내재시킬 수 있었다. 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협업하는 공간 안에서는 내가 어떠한 누를 끼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책임감이 점점 커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작품 속에서의 비중도 커졌기 때문에 그 책임감도 같이 성장해 올 수 있었다. 그 또한 힘들어도 감당하면서 내가 성숙해져가는 것 같다.”

단 몇 마디에서 세 가지 진심(眞心)이 느껴졌다. 어린 시절부터 활동하며 사람 많은 현장에서 자신을 다독이며 길러낸 ‘인내’란 진심 하나, 함께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에게 누가 되지 않겠다는 ‘책임’이란 진심 둘, 마지막으로 그 상황 속에서 성장하고 성숙해져간 자신의 ‘삶’에 대한 진심 셋이다.

27년차 배우 박은빈(31)이 진심을 다해 전하는 마음은 매번 모두의 가슴 속에 유쾌하고, 다정하고, 의리있고, 강단있고, 아프지만 따뜻한 캐릭터로 전해진다. 드라마 ‘비밀의 문’(2014) 혜경궁으로, ‘청춘시대1, 2’(2016-2017) 송지원으로, ‘이판사판’(2017) 이정주로, ‘스토브리그’(2019) 이세영으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2020) 채송아로, ‘연모’(2021) 이휘로 시청자의 마음을 섬세하게 두드린 그다.

‘스토브리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연모’로 이제 막 30살을 넘긴 배우가 거둔 연이은 성취 이면에는 지난 26년간 다양한 인물들로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채워넣은 성실함, 캐릭터 분석 노트를 작성하며 맡은 배역을 하나하나 해부해나간 치열함, 현재의 성공에 도취되지 않는 겸손함, 그리고 아무도 걷지 않은 길에 도전하는 담대함이 깔려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하는 작품은 매번 특별하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마녀 Part2. The Other One’(이하 ‘마녀2’) 인터뷰를 위해 스포츠서울과 만난 박은빈은 “(작품을 선택할 때)무조건 작품의 메시지를 봤다”며 “작품을 하면 남는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냥 보고 끝내는 작품이기보단, 보는 사람에게도, 그 작품을 한 나 자신에게도 의미가 남을 수 있는 작품을 염두에 두면서 촬영을 하기로 마음 먹은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또 그런 것들을 차치하고 그냥 이유없이 좋은 작품들도 있었다. 작품을 하는 것도 인연이 맞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내가 무엇을 하든 간에 내가 선택한 데는 다 이유가 있을테니까 당시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그런 작품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작품 중간에 촬영하다가도, 촬영한 후에도 가끔 처음으로 돌아갈 때가 있다. ‘내가 이 작품을 왜 한다고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 때 자문자답을 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은빈 (2)

체구가 크지 않음에도 강단있는 역할을 많이 했다. 박은빈은 “(내게 그런 역들이) 오기도 하고, 택하기도 한 것 같다”며 “내게 제안오는 작품들과 캐릭터를 보면 ‘요즘 나의 이미지는 이런 느낌이구나’ 역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나를 좋게 봐주시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배우로서의 가능성과 나에 대한 가능성을 분리해서 스펙트럼을 좀 더 확장시키고 싶은 마음이다. 그때 그때 내 마음을 두드리는 작품들을, 인연이 닿는 작품들을 많이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다수의 드라마의 성공으로 인생 캐릭터를 많이 만들었다는 평가가 따른다. 이날 기자들은 박은빈을 향해 ‘드라마 탑티어’라며 얄궂게 물었다. 전작들의 연이은 성취가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부끄러운지 얼굴을 감싸쥔 박은빈은 “흥행 어쩌구 해주시는 것 자체가 아직 나에겐 낯선 얼마 되지 않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나 혼자 열심히 잘 해서 잘 됐다기 보단 모두의 노력이 함께 잘 조화됐을 때 작품과 캐릭터를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어 “(어떤 작품의 배역이)인생 캐릭터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너무 좋지만 앞으로도 계속 경신됐으면 좋겠다. (오는 29일 방송되는)‘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도 좋은 작품이다. 그 캐릭터가 공개됐을 때 과연 어떤 반응이실지 감히 예측을 못하겠다. 그 캐릭터도 큰 도전을 했으니 시청자들이 잘 봐주시고 인생 캐릭터라고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은빈 (5)

배우 박은빈이 아닌 인간 박은빈으로서의 모습도 들려줬다. 그는 “스스로 생각했을 때 완벽주의 성향을 지향하나 실제로 완벽하게 살고 있지는 못하는 사람이다. 완벽주의라 스스로를 피곤하게 한다. 그런데 피곤할 때 융통성을 확 발휘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게 또 꽉 막힌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웃음). MBTI는 인프피(INFP)가 많이 나오지만 잇팁(ISTP)도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1996년 아동복 모델로 데뷔해 27년째 연기자 생활을 하고 있다. 반세기의 절반이 넘는 시간동안 꾸준하고 기복없이 거의 매해 작품을 선보이는 그에게도 마음이 요동쳤던 순간이 있었을까. 박은빈은 “대학생 때 몰랐던 나를 마주했다. 그렇게 마냥 좋았던 일은 아니더라. 몰랐던 나를 발견하고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고, 이걸 내가 모르고 살았다니 하는 후회가 될 때도 있었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항상 새로운 사건들이 발생하잖나. 그런 혼란의 시기를 겪고 이제는 정제가 된 것 같다. 나한테 정말 좋은 시간을 잘 보내온 것 같아서 어린 날의 나에게 고맙다”고 털어놨다.

이어 “아무래도 어렸을 때부터 너무나 당연하게 분신처럼 나와 다른 삶을 살아야 되는게 숙제였기 때문에 (작품 속)다른 인생이야 그 작품에서 기승전결로 완결을 맺지만, (실제의)나는 계속 나아가고 있는 존재로서 이 삶이 완결될 때까지 나는 지금 어느 시기를 지나고 있으며, 나라는 캐릭터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았다. 그런 지점들이 대학생활을 겪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더 중요한 캐릭터들을 만나면서 나를 되돌아 보고 나를 알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점점 단단해 지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은빈은 거듭 대학생활이 소중한 시기였음을 언급했다. 그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직면할 시간이 없었다면 대학에 와서(심리학을 전공해)학문적으로도 나에 대한 물음을 계속할 수 있었고, 거기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려보는 과정 속에서 내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배우로서 말고도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는데 방법론적인 것을 알려주다보니 나를 타자화시켜 자기연민을 멀리하고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될 수 있었던 시기였다”고 설명했다.

박은빈 (1)

영원히 20대에 머물 것 같던 그도 어느덧 30대를 보내고 있다. 박은빈은 “문득문득 (내 나이에 대해)놀랄 때가 있긴 하다. 나는 작품으로 나를 기억하게 되더라. 작년이던 서른 살 때는 ‘마녀2’와 ‘연모’로, 올해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될 거다. 그런식으로 작품 속의 그 나이에 내가 녹아들어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요새는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는 생각이 드는 게, 하고 싶은 작품과 캐릭터는 너무 많은데 할 수 있는 게 한정적이다 보니 아깝더라. 몸을 최소 둘로 나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다. 그런 점에 있어서 세월의 흐름이 조금 아깝지만 되게 충실하게 보내고 있기 때문에 후회는 없을 것 같다”며 미소지었다.

최근 몇 년간 휴식기 없이 매년 한 편 이상의 작품으로 대중을 찾아오고 있다. 그러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후로 팬들은 당분간 박은빈을 화면에서 못 볼지도 모르겠다. 그는 “‘연모’를 촬영하면서도 차기작으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예약되어 있는 상태라 사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막바지 촬영을 앞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잘 마무리하고 휴식을 잘 취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감사하게도 그동안 많은 제안을 받은 작품들을 검토해야 할 것 같다. 다음 스텝으로 어떤 모습을 어떤 작품으로 보여드릴지는 고심한 끝에 새롭게, 또 반갑게 찾아뵙겠다”고 말했다.

박은빈은 ‘후회가 없는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 했다. 그는 “행복의 기준은 다 다르겠지만 어찌됐든 지난 날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일을 하면서 너무 스트레스에 함몰되지 않고 스스로 즐겁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인간 박은빈을 스스로 잘 응원해 주는 것이 내 목표랄까. 요즘 삶의 목적이자 지향이다”라며 눈을 반짝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난 17일 열렸던)‘마녀2’ 무대인사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여할 수 있을 같은데 팬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어서 기쁘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있다. 이 시기에 개봉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편, ‘마녀2’는 초토화된 비밀연구소에서 홀로 살아남아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소녀’(신시아 분) 앞에 각기 다른 목적으로 그녀를 쫓는 세력들이 모여들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액션 영화로 신시아, 박은빈, 서은수, 진구, 성유빈, 조민수, 이종석, 김다미가 출연한다. 137분. 15세 관람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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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16@sportsseoul.com

사진 | 나무엑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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