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 “나쁜 년이 나쁜 짓 한 거랑 좋은 년이 나쁜 짓 한 건 천지 차이야. 네가 나에 대해서 뭘 까발리든지 정의로운 코뿔소가 서민 뒤통수 때린 건 이제 덮을 수가 없어.”(극중 서민정 대사)

지난 14일 공개된 김희애·문소리 주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퀸메이커’는 이처럼 현실에 기반한 뼈 때리는 대사가 깊은 울림을 안긴다.

드라마는 재벌가인 은성그룹 전략기획실에서 오너리스크를 관리하던 황도희(김희애 분)가 ‘코뿔소’란 별칭으로 불리는 인권변호사 오경숙(문소리 분)을 서울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선거판에 뛰어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작품은 주요 출연진을 대거 여성으로 내세웠다. 두 주인공 황도희와 오경숙은 물론 황도희가 일한 은성그룹 회장 손영심(서이숙 분)과 그의 두 딸 은서진(윤지혜 분), 은채령(김새벽 분), 오경숙과 서울시장 후보자리를 놓고 당내경선을 벌이는 3선 서민정 의원(진경 분)과 황도희의 자리를 꿰찬 은성그룹 새 전략기획실장 국지연(옥자연 분)까지 ‘센 언니’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드라마는 공개 사흘만에 넷플릭스 시리즈 세계 6위(플릭스 패트롤 기준)에 올랐다. 국가별로는 한국, 인도네시아,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등 아시아 7개국 1위에 올랐다. 톱10에 오른 나라는 37개국이다.

◇‘땅콩회항’ 조현아부터 안희정·윤미향·박근혜·노회찬까지…현실정치 차용, 통속적 전개는 아쉬워

‘퀸메이커’는 첫 장면부터 강렬하다. 직원에게 폭언 및 폭행을 가한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는 은성그룹 둘째 딸 은채령 상무의 모습은 2014년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을 벌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검찰출두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직원에게 익룡 샤우팅을 하는 은채령의 모습은 ‘물컵 갑질’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를 연상시킨다.

황도희는 이 과정에서 채령에게 명품스카프를 두르게 하는 ‘블레임 룩’으로 대중의 눈을 가리는 기법을 꺼낸다. 검찰 조사 땐 채령이 모유 유축하는 사진을 연출해 마치 검찰이 출산한지 얼마 안 된 산모의 모성을 박탈한 듯 여론전을 펼친다. 숱한 재벌가 인사들의 경찰, 검찰 출두에서 벌어졌던 여론전의 재현이다.

‘퀸메이커’는 이처럼 작품 곳곳에서 현실에 기반한 에피소드를 차용한다. 오경숙이 여성연대의 후원금을 횡령했다는 의혹을 받는 사건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정의기억연대의 보조금 및 후원금 횡령 의혹으로 검찰조사를 받았던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건을 연상케 한다.

오경숙과 서울시장 선거를 놓고 혈전을 펼치는 손영심 회장의 사위 백재민(류수영 분)이 유세 중 커터칼 테러를 당하는 장면은 2006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유세 도중 피습당한 사건을, 그의 여성 보좌관 한이슬(한채경 분)이 미투 폭로를 하려다 누명을 쓰고 투신사망하는 사건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오경숙이 국회에서 노동자들의 열악한 휴식공간을 표현하고자 신문지 위에 눕는 모습은 2017년 국정감사장에서 고(故) 노회찬 의원이 일반 재소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알리려 신문지 위에 눕던 모습과 유사하다.

뿐만 아니다. ‘서민의 종’을 자처하는 3선 의원 서민정이 고액 피부과를 이용하는 모습은 2011년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의원의 연회비 1억원 피부과 사건과 흡사하다.

최근 10년 내 국내 정계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반영되다 보니 현실 정치인지, 드라마인지 다소 헷갈릴 정도다. 드라마는 이런 일련의 사건들에 통속적인 방식으로 살을 입혀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극 초반 성향이 전혀 다른 두 여성이 연대하는 과정을 넘어서면 지나치게 특정 진영의 목소리를 옹호하는 듯한 느낌마저 안긴다. 드라마를 연출한 오진석 PD가 앞서 제작발표회에서 “두 여성의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정치와 권력이 개입됐지만 특정 정당이나 정치색을 표현하고자 한건 아니다”라고 해명한 게 무색할 정도다.

◇ ‘여걸’들의 연기 빅매치+신예 김새벽 눈길

그럼에도 걸출한 여걸들의 연기 빅매치는 시선을 압도한다.

황도희 역의 김희애가 극 초반 은성그룹 해결사로 나서는 장면은 JTBC 드라마 ‘밀회’(2014)의 오혜원이나 JTBC ‘재벌집 막내아들’(2022)의 진성준과 비슷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괴물이 되는 자신을 깨닫고 오경숙에게 스며드는 모습은 김희애의 섬세한 연기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경지다.

오경숙 역의 문소리는 시원스럽게 극의 사이다 역할을 담당한다. 여기에 서늘한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은성그룹 회장 손영심 역의 서이숙, 노련한 3선 정치인 서민정 역 진경의 능수능란한 연기력이 더해지며 대본과 연출의 빈틈을 메운다.

은채령 역의 김새벽은 여걸들 사이 발견한 보석이다. 영화 ‘벌새’(2019)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수상했던 김새벽은 ‘퀸메이커’에서 재벌가의 어두운 면모를 다채로운 표정으로 소화해내 주목받았다.

무엇보다 드라마는 사람에게 실망했음에도 사람이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다만 워낙 전개가 통속적이다 보니 OTT플랫폼이 아닌 TV 채널을 통해 봤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mulga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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