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대전=윤세호기자] 기막힌 인연이 될 수 있었다. 15년 전 프로 입단은 생각도 하지 않았던 무명 선수를 찾았다. 설득을 거듭해 대학이 아닌 프로 유니폼을 입혔고 이후 감독과 핵심선수로 함께 하는 듯 싶었다.

작년 11월 마무리캠프 초반까지만 해도 재회에 대한 기쁨을 전했는데 인연이 완벽히 이어지지는 못했다. 스카우트 시절 채은성을 영입을 주도한 LG 염경엽 감독과 현재 한화 중심타자로 활약 중인 채은성(33) 얘기다.

오랜만에 옛 동료와 재회했다. 채은성은 21일 대전 LG전을 앞두고 LG 선수단을 찾아와 한 명씩 인사를 전했다. 감독과 코칭스태프, 선수는 물론 구단 직원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염경엽 감독에게는 취재진과 인터뷰 중 찾아와 어깨 안마를 했다.

염 감독도 채은성을 반갑게 맞이하며 “우리 많이 힘들다. 매 경기가 피말린다”고 했고 채은성 또한 “저희도 많이 힘듭니다. 매 경기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이어 염 감독은 “너무 잘 치는 거 아니냐. 지금 다 1등이더라”고 미소지면서 “너도 있었으면 우리는 진짜 강했는데…”라고 아쉬움도 보였다. 이에 채은성은 “감독님 만약은 없습니다”며 미소로 화답했다.

약 5개월 전 이천 마무리캠프 초반까지만 해도 FA 채은성을 2023시즌 라인업에 넣었던 염 감독이다. 하지만 스토브리그 결과는 한화와 FA 계약이었다. 한화는 채은성에게 6년 최대 90억원 계약을 제시했고 LG는 샐러리캡으로 인해 한화가 제시한 규모를 맞출 수 없었다. 2009년부터 시작된 LG와 채은성의 인연에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2009년 채은성이 LG 유니폼을 입게 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염 감독이다. 2008년 LG 스카우트 시절 염 감독은 순천효천고 채은성을 직접 만나 설득에 들어갔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한 그에게 LG 육성선수 입단을 제안했다.

채은성은 당시 상황에 대해 “고교시절 나는 야구를 잘하는 선수가 아니었다. 그래서 프로 입단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드래프트 미지명도 그렇게 아쉽지 않았다. 테스트를 통해 신고선수로 가거나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염 감독은 채은성의 부모님도 직접 만나 설득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채은성의 선택은 LG가 됐다. 이후 과정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등번호 세 자릿수에 포지션도 불분명한 선수였던 그가 역경을 이겨내고 또 하나의 육성선수 신화를 만들었다. 클린업 한 자리를 든든히 지키며 2018년 LG 구단 역대 한시즌 최다 119타점을 달성했다.

스카우트가 한 팀의 지휘봉을 잡는 것. 육성선수가 중심타자로 올라서는 것 모두 확률적으로 희박한 일이다. 염 감독은 지난해 LG 사령탑이 확정된 시점에서 “LG에 이전부터 알고 지낸 선수들이 많다. 넥센 시절 선수들도 있고 LG 스카우트 시절 영입한 선수들도 있다. 은성이를 영입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기막힌 인연을 전했다.

LG는 21일 대전 한화전까지 팀타율 0.298, 팀 OPS 0.804로 두 부문에서 1위에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채은성이 있었다면 염 감독의 바람대로 좌우타자 균형까지 이루는 엄청난 타선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채은성이 말한 것처럼 야구도, 인생에도 만약은 없다. 채은성은 처음 LG 선수들을 상대한 이날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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