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정하은기자] 2018년 데뷔한 걸그룹 공원소녀의 일본인 멤버 미야(30·본명 미야우치 하루카)가 본인이 겪은 K팝 시장의 실태를 폭로하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지난 21일 미야는 일본 아사히 신문과 인터뷰에서 한국의 아이돌 양성 시스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연습생 시절부터 데뷔, 그리고 사실상 팀 해체까지 한국에서 5년여를 보낸 미야는 현재 일본 소속사와 계약을 맺고 고국에서 활동을 예고했다.

미야는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연습생 시절) 우리는 감옥에 있었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연습실에 가면 매니저 앞에서 몸무게를 쟀다. ‘바나나와 삶은 달걀을 먹겠다’, ‘사과 1개만 먹겠다’ 등의 식단을 보고한다. 미칠 것만 같았다”면서 “돈도, 자유시간도, 휴대폰도 없었다. 가족과도 매니저 전화로 간신히 연락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특히 소속사의 식단 통제를 이야기하며 “뮤직비디오 촬영 때 스태프들을 위한 음식이 있었다. 떡볶이와 치킨 등을 훔쳐서 몰래 먹곤 했다. 이 일로 멤버들 간의 팀워크가 끈끈해졌다”고 덧붙였다.

공원소녀는 2018년 9월 데뷔한 7인조 다국적 걸그룹으로 미야, 서령, 서경, 레나, 앤, 민주, 소소로 구성됐다. 하지만 데뷔 1년 만에 전 소속사 키위미디어그룹이 회생 절차를 밟게 되면서 더웨이브뮤직으로 소속을 옮겼다.

그러나 2022년 2월부터 소속사가 임대료를 내지 않아 멤버 모두 숙소에서 퇴거 조치 됐으며, 같은 해 5월 발매한 앨범을 끝으로 현재까지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했다. 결국 공원소녀 멤버들은 지난해 1월 소속사를 상대로 전속계약 해지 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무변론으로 승소했다.

멤버 중 미야와 대만 국적 소소의 경우 소속사에서 비자 업무마저 방치해 불법체류자 신세가 됐고, 두 사람은 벌금을 납부하고 전과까지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파란만장했던 한국활동을 끝낸 미야는 올해 4월 일본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새 출발을 알렸다.

폭언·폭행·성희롱까지, 반복되는 소속사 갑질 횡포

“참지 않으면 마지막 기회가 사라질 것 같았다” “우리 꿈을 잃게 될까봐 참고 버텨왔다”(소속사 대표를 고소한 오메가엑스 기자회견 中)

미야의 이번 폭로로 아이돌 육성 시스템에 가려진 인권 침해 등 K팝의 그늘이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왔다. 미야 이전에도 여러 아이돌 그룹에서 과도한 인권침해, 폭력, 학대 정황이 폭로된 사례가 있다.

지난해에는 오메가엑스 멤버들이 전 소속사 대표 A씨가 멤버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하고, 성희롱과 성추행도 일삼았다고 폭로해 파장을 낳았다. 실제로 A씨가 미국 공연을 마친 멤버들을 윽박지르는 장면이 온라인에 공개되며 충격을 안겼다.

지난 2019년에도 밴드 더 이스트라이트 멤버였던 이석철·이승현 형제가 소속사 프로듀서 B씨에게 상습 폭행을 당했다며 B씨를 상습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한 바 있다. B씨는 징역 1년4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그룹 TRCNG 멤버 우엽·태선도 소속사 직원에게 폭행·폭언을 당했다며 안무팀장 등 3명을 고소했고, 이 중 2명은 벌금형 처분을 받았다.

현재 K팝은 그 어느 때보다 황금기를 맞고 있다. 뛰어난 기획력과 육성 시스템을 바탕으로 유수의 소속사가 아이돌을 발굴하고 길러내고 있으며 한 해에도 수 십 팀, 수 백 명이 넘는 이들이 데뷔한다.

많은 10대들의 꿈이 아이돌이 됐고, 수많은 새 얼굴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우상’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가파른 K팝 시장의 성장세와 달리 중소 기획사의 반복되는 갑질·횡포 논란은 사각지대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권리보다 의무 강요 받는 아이돌, 또 K팝 비극 반복되지 않으려면

엄청난 경쟁을 뚫고 대중 앞에 선 아이돌도, 데뷔라는 목표를 향해 땀 흘리는 연습생도 권리보다는 의무를 강조하는 업계의 분위기 속에서 통제의 대상이 되곤 한다.

국가인권위가 2020년 실시한 ‘대중문화산업 종사 아동·청소년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많은 이들이 제작 현장에서 폭언, 폭행, 괴롭힘을 당하는가 하면 다이어트 및 성형수술 권유를 받는 등 인권침해를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나 외모, 신체조건 등으로 인한 차별 행태도 드러났다. 또 휴대폰 사용이나 연애가 금지되는 등 사생활의 비밀과 자기 결정권을 존중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대부분의 아이돌 연습생이 청소년기부터 과도한 경쟁을 겪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2021 대중문화예술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기획사에 소속된 연습생 1895명 가운데 43%(826명)가 19살 미만 미성년자다.

이르면 10대 초반부터 과도한 외모 강박에 시달리거나 강도 높은 훈련을 받으며 인격과 권리를 침해받는게 내면화 되면서,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부적절한 방식으로 표출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 중이다.

한 중소 기획사 관계자는 “아무리 연습생에 대한 가혹 행위가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해도, 결국 이들의 데뷔를 결정하는 건 소속사다. 나이도 어리고 사회생활도 전무한 이들에게 소속사는 절대 권력이나 마찬가지”라며 “인권 침해,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쉽게 문제 제기를 못하는 이유는 소속사와 계약 해지는 물론 다른 소속사로 이적 역시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사실상 꿈을 포기하는 각오를 해야한다”라고 말했다.

최근 우리 곁을 떠난 아스트로 멤버 고(故) 문빈의 비보 이후 영국 가디언 등 외신은 “K팝 스타는 10대 초중반의 어린 나이에 소속사에 들어와 엄격한 노래와 춤 연습으로 하루를 보내며 통제된 삶을 살아간다”라며 문빈의 비극을 ‘한국 아티스트 육성의 문제점’과 연관지어 보도했다.

한국 아이돌 산업의 민낯이 계속해서 드러나는 가운데, 또 다시 K팝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보다 체계적이고 현실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아이돌 그룹 매니저는 “아이돌 육성 구조는 일반인들이 잘 알 수 없는 폐쇄적 구조라서 드러난 것보다 피해 사례가 훨씬 많을 것”이라며 “적극적인 신고 시스템을 소속사에서 자체적으로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더 강한 감시 체계와 관리가 뒷받침 돼야 한다”고 바라봤다.

jayee212@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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