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람틴(홍콩)=황혜정기자] 1사 만루, 주자 한 명만 들어오면 콜드 게임이 눈 앞에 있었다.

한 점만 추가하면 5회 콜드게임 승리를 챙길 수 있게된 상황에서 양서진이 몸에 맞는 볼로 출루해 1사 만루가 됐고, 대회기간 대부분 3번 지명타자로 출장했던 주은정이 완벽한 좌전 적시를 터트려 이지아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대한민국 여자야구 대표팀이 14-4 콜드게임 승리를 거두며 소중한 동메달을 목에 걸게된 순간이다.

경기 후 주은정(28)은 “당시 타석에 들어설 때 별 생각 없었다. 최대한 마음 편하게 내 스윙을 하고 싶었다”며 경기의 종지부를 찍은 적시타 상황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상대 투수가 속구를 던질 카운트였다. 변화구가 들어오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갖고 때렸는데 잘 맞았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의 좌전 안타를 상대 수비가 잡지 못하며 3루 주자 이지아가 홈을 밟아 경기가 끝났다. 주은정은 “됐다. 우리 이제 메달따고 집에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미소 지었다.

주은정이 홍콩에서 열린 2023년 아시안컵(BFA)에서 딴 동메달은 야구 국가대표로서는 처음 딴 국제대회 메달이다. 주은정은 “야구 국가대표로선 첫 메달인 만큼 값지다. 섭씨 36도까지 올라가는 더운 날씨에도 다들 열심히 뛰어줬다. 다 견디고 이룬 메달”이라고 했다.

주은정은 대회 전 걱정이 많았다. 여자야구 국제대회는 엔트리가 20명에 불과하다. 한 명이라도 다친다면 큰 타격을 입는다. 주은정은 “다치지 않고 대회에 임하고 싶었다. 지금 안 아픈 선수가 없었다. 나도 다리 쪽이 가장 안 좋았다. 특히 세계대회 진출권이 걸린 필리핀전(5월28일)에서 모든 것을 쏟다보니 부상 아닌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부상으로 조별리그 1차전이었던 일본전에서 우익수로 출장한 뒤 대부분의 경기를 지명타자로 뛴 주은정은 팀에 미안했다고 털어놨다. “교체가 필요한 시점에서도 내가 수비를 뛸 수 없어 그 점이 가장 미안했다. 홍콩전까지 끝나고 모든 대회가 마무리되자 미안함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은정은 타율 0.333(15타수 5안타), 7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829로 3번 타자로서 제 몫을 다했다. 무엇보다 좌타자가 부족한 대표팀에 믿음직한 좌타자가 돼줬고, 깔끔한 번트로 주자를 진루시켰다.

주은정은 경기가 끝나고도 승리의 환호를 즐기기 보단 남몰래 더그아웃 뒷정리를 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대표팀 한 선수는 “주은정이 모두가 환호할 때 조용히 물통과 팀 장비들을 챙기더라”고 귀띔했다.

책임감이 강한 주은정은 대표팀 후배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남겼다. 대표팀은 오는 8월 초 캐나다로 가서 2023년 세계야구월드컵(WBSC)에 출전하는데, 이번 아시안컵 멤버 일부가 제외되고 새로 충원해 출전한다.

주은정은 “나도 예전에 대표팀에서 중도 하차한 적이 있다. 교체돼 본 당사자로서 힘들었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경험이 되는 것 같다. 이 경험을 통해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고, 발전의 계기가 마련됐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선수단도 정말 고생 많았고, 함께 노력해 세계대회 진출권 획득이라는 목표를 이뤘다. 그렇지만 명단 교체가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할 필요가 있다. 선수라면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어린 선수들의 실력이 정말 좋아졌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우린 더 강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주은정은 동메달을 수확한 후에도 후배와 팀을 먼저 생각했다. 그리고 쉼 없이 다음 대회 전까지 보완해야할 점을 그렸다. 그는 “한국에 돌아가서 수비가 더 탄탄해야 좋은 성적을 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매주 이틀 밖에 훈련을 하지 못하지만 만날 때만큼은 수비를 집중적으로 훈련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t1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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