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정다워기자] “인성, 도전, 열정, 패기, 헌신 다섯 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여기에 맞는 선수들로 끌고 갈 것이다.”

지난해 1월 밀양, 경주에서 첫 소집 훈련을 시작했던 20세 이하(U-20) 대표팀의 김은중 감독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다섯 가지 화두를 던졌다. 그는 “어린 선수들인만큼 1년 사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성실한 자세와 긍정적인 태도를 갖춘 선수가 더 발전하고 팀에 도움이 된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 감독이 팀의 키워드로 내세운 기조는 1년6개월간 이어졌고, 결국 아르헨티나에서 새로운 신화를 만들었다. 김은중호는 2019년 폴란드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4강에 오르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아시아 유일의 4강팀으로 이제 2회 연속 결승 진출이라는 위대한 기록에 도전한다. 9일 이탈리아와의 4강전에서 승리하면 또 다른 신화를 작성하게 된다.

사실 김은중호는 4년 전 대표팀에 비해 관심을 받지 못했다. 당시엔 이강인이라는 특급 유망주가 있었고, 조영욱, 오세훈, 엄원상 등 연령대 대표팀에서 꾸준히 두각을 드러낸 선수들이 있었다. 반면 이번 대표팀에는 상대적으로 인지도 높은 스타가 없었다. 지난달 브라질 출국 전까지 김은중호가 있는 현장은 보통 한산했다. 스타가 부족한 탓에 미디어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게다가 개막을 한 달여 앞두고 개최국이 인도네시아에서 멀고 먼 남미로 변경되는 바람에 취재진도 없이 대회를 치러야 했다. 폴란드 멤버와 비교하면 큰 기대를 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김 감독이 8강전 승리 후 눈물을 보인 것도 한참 예민하고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선수들이 외면받은 현실 때문이다.

김 감독은 “무모한 도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4강에 갈 줄 몰랐다. 코칭스태프와 열심히 팀을 만들었는데 선수들이 잘 따라와 고맙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평가를 뒤집고 김은중호는 4강에 올랐다. 선수들의 노력과 팀을 하나로 만든 김 감독의 리더십이 성공의 원동력이다.

김 감독은 1년6개월간 늘 ‘원팀’을 강조했다. 적절한 수준의 규율과 팀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의 자율을 동시에 부여해 선수단 공기, 팀 문화를 일관성 있게 만들었다. “친구들과 이렇게 함께 뛸 기회는 이번뿐이다. U-20 월드컵은 평생 한 번만 나오는 대회”라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주입해 강력한 동기부여를 제시했다. 부상으로 낙마한 박승호를 계속해서 언급하며 팀, 동료를 위한 헌신을 강조했다.

수훈 선수를 묻는 질문에도 그는 “우리는 21명 모두가 뛴다. 21명이 한 팀으로 움직인다. 전반에 나간 선수, 후반에 나간 선수, 교체로도 못 나간 선수, 부상으로 한국으로 돌아간 박승호까지 모두 팀으로 싸워서 이겼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하며 팀을 강조했다.

이번 대회 최고의 히트 상품인 스트라이커 이영준도 김 감독의 노력이 만든 결과물이다. 지난해 1월까지만 해도 김 감독은 스트라이커가 없어 크게 고민했다. 그런데도 그는 “있는 자원을 잘 찾아 만들어야 한다. 제가 그 포지션으로 뛰었으니 제 노하우를 발휘해 잘 키워볼 생각이다. 첫 동계훈련에서 두각을 드러낸 선수도 일부 있다. 장기적으로 관찰하며 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 등장한 스트라이커가 바로 이영준이다. 이후로 이영준은 김은중호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성장했고, 월드컵에서 2골을 터뜨리며 4강 진출의 핵심 구실을 했다. 대회 전 성진영, 대회 중 박승호의 이탈로 인해 사실상 전 경기 풀타임을 뛰고도 쓰러지지 않는 중요한 선수로 도약했다.

4강 진출의 원동력이 된 세트피스도 김 감독이 공을 들인 비밀무기였다. 수준급의 키커 이승원이 있고, 헤더 능력이 좋은 여러 선수가 포진한 만큼 코너킥이나 프리킥을 통해 득점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꾸준히 세트피스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세트피스로만 무려 4골을 터뜨렸다.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김 감독은 1979년생으로 국내 사령탑 중에서는 어린 편에 속한다. 이제 겨우 1년6개월을 했을 뿐이지만 김 감독은 한국 축구를 이끌 새로운 리더로 급부상했다. U-20 대표팀을 이끈 모습을 보면 지도자로서 김 감독의 미래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we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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