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치바(일본)=장강훈기자] “오빠, 세 번 흔들었어. 응, 이번엔 네 번이야.”

부담감이 엄습하면 자신도 모르는 행동 패턴이 나타나기도 한다. 샷 하나에 순위 등락을 반복하는 프로골프 선수는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중압감과 싸워야 한다. 나쁜습관을 떨쳐내는 게 중요한데, 가족이 도움을 주면 심리적으로 안정이 더 된다.

한·일 자존심 대결에서 우승 쾌거를 이룬 양지호(34·PTC)는 아내 도움을 제대로 받았다. 양지호는 18일 일본 치바현에 있는 이쓰미 골프클럽(파73·7625야드)에서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와 일본골프투어(JGTO) 공동주관으로 열린 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총상금 10억원)에서 최종합계 20라운드 272타로 우승했다. 지난해 5월 치른 KB금융 리브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승을 따낸데 이어 1년 만에 따낸 감격 우승이다.

양지호는 “아내와 2년째 선수와 캐디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데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생겼다. 올해까지 함께하기로 했는데, 또 우승할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맙다. 사랑한다. 좋은 시계를 선물하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대회 기간 동안 “루틴을 지키는 데 집중한다”고 강조하면서 “아내가 조언을 해줘 루틴을 빼먹지 않고 지킬 수 있었다”고 밝혔다. ‘빼먹지 않고 하는 루틴’에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 양지호는 “부담감을 느끼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습관이 있다. 중압감 탓에 나도 모르게 나오는 것인데, 아내가 옆에서 지켜보면서 계속 얘기를 해줬다. 고개를 흔들지 않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아내 덕분에 지켰다. 그 덕에 우승까지 했다”고 말했다.

갑작스레 ‘내조의 여왕’으로 꼽힌 아내 김유정(30) 씨는 손사래를 쳤다. 김 씨는 “결혼하고 (남편이) 골프가 안정됐다는 말씀을 하시더라. 원래 잘하던 선수였는데, 결혼으로 (심리적인) 안정감이 생긴 것뿐이다. 지난해 우승한 뒤 경기가 잘 안풀리니까 나쁜 습관이 생겼는데 이번 대회를 앞두고 ‘버리자’는 얘기를 했다. 내가 한 건 나쁜습관이 나올 때 얘기한 것뿐”이라고 자세를 낮췄다.

감격적인 우승 트로피를 아내에게 바친 양지호는 “우승한 게 아직 실감 안난다”면서 “지난해 이맘때쯤 우승했다. 우승 후 욕심이 생기니 (성적)부담이 더 커지더라. 골프가 욕심부린다고 되는 게 아닌데 내 욕심이 내 발목을 잡았다”고 돌아봤다. 그는 “첫우승 후 번번이 컷오프하고, 중위권 정도에 머물렀다. 우승이 우연이라는 얘기도 들리더라”고 말했다. “우승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우연이라는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아팠다. 아내가 ‘실력을 믿어’라며 ‘우승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을 많이 했다. 1년 만에 우승으로 증명해 너무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한·일전을 치르는 국가대표의 심정으로 대회를 치른 양지호는 “스포츠여서, (일본에)꼭 이기고 싶었다. 이런 대회가 자주 생겼으면 좋겠다. 챔피언조에서 함께 플레이한 나카지마 게이타는 냉정하고 멀리치는 빼어난 선수더라. 골프로는 배울 점이 많은 친구라는 생각을 한 하루”라고 밝혔다.

JGTO에 두 차례 도전했지만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못한 양지호는 이번대회 우승으로 코리안투어와 JGTO 2년간 시드를 확보했다.

그는 “JGTO는 어릴 때부터 꿈의 무대였다. 솔직히 실패해서 한국으로 돌아갔던 것”이라면서도 “올해는 코리안투어에 집중할 생각이다. 향후 일정을 봐서 JGTO와 병행하는 것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JGTO에서 뛰는 것이 아닌 우승을 하려면 이번 우승을 동력삼아 한 단계 도약하는 게 중요하다.

‘내조의 여왕’을 등에 업은 양지호가 비상을 꿈꾸고 있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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