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 시퍼렇게 멍들어 퉁퉁 부어터진 눈과 피딱지가 앉았던 입술 분장 때문에 자칫 누군지 알아보지 못할 뻔 했다.

18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신세계’, ‘마녀’ 시리즈를 연출한 박훈정 감독의 새 남자가 된 영화 ‘귀공자’의 주인공 강태주는 또렷한 이목구비가 인상적인 훈남이었다.

그는 지난 21일 개봉한 ‘귀공자’에서 갑작스럽게 자신의 뒤를 쫓는 이들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뛰어야만 하는 코피노(한국인과 필리핀인 혼혈) 마르코 연기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마르코는 어머니의 병원비를 위해 불법 복싱경기에 선수로 뛰고 강도질까지 가담한다. 이런 마르코 앞에 평생 본 적 없던 한국 아버지가 그를 찾는다며 수상한 무리들이 나타나면서 숨가쁜 추격전이 벌어진다.

강태주는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지만 막막했던 마르코의 심경이 나와 비슷했다”라고 털어놓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 역시 ‘귀공자’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몇 년간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며 눈물 젖은 빵을 먹어야 했다.

전남 목포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부모 슬하에서 자란 강태주의 꿈은 모델이었다. 서울 광운대 미디어학부로 진학한 뒤 대학생 잡지 모델로 발탁되면서 자신을 표현하는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군복무를 하며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모델에서 연기로 방향을 틀었다. 의무경찰로 복무했기 때문에 주말마다 연기학원을 다닐 수 있었다. 목포의 부모는 아들의 꿈을 묵묵히 응원하며 지원해줬다.

“배우가 되고자 마음먹은 뒤 100번도 넘게 오디션에서 탈락했어요. 처음에는 1차에서, 2년차 때는 2차에서, 마지막 해는 최종에서 고사하면서 ‘이게 나의 한계인가’ 자괴감에 빠지곤 했죠. 그래도 아직은 더 도전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만난 작품이 ‘귀공자’였어요.”

‘귀공자’ 오디션을 볼 때는 전략을 달리 했다. 그간 박훈정 감독의 작품에서 접할 수 있었던 거칠고 남성적인 면모보다 감성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 갈고닦은 영어와 일본어도 오디션에서 요긴하게 뽐낼 수 있었다.

강태주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영어 공부를 했다. 영어로 욕도 잘한다며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라고 웃었다. 최종 합격 뒤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두달 동안은 마르코로 변신하는 과정이었다. 박훈정 감독은 강태주에게 진짜 복서의 몸을 요구했다.

매일 공복 유산소로 아침을 열고 3시간 동안 실제 복싱선수들의 훈련 과정인 서킷 트레이닝으로 날렵하고 잔근육이 많은 복서의 몸을 만들었다. 코피노 가정에서 성장한 마르코의 소외감을 이해하기 위해 다문화가정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 결과 강태주는 귀공자 역의 김선호, 한이사 역의 김강우와 함께 ‘귀공자’의 삼각편대를 이끄는 마르코로 당당히 스크린 데뷔 신고식을 치렀다. 김선호가 맑은 눈의 광인, 한이사가 돌은 눈의 광인이라면 그는 억울한 눈의 광인으로 ‘광인 3인방’에 이름을 올렸다.

‘귀공자’ VIP시사회 때 주연배우 자격으로 당당하게 부모님과 지인들을 초청했다. 강태주는 “원래 부모님은 내가 작은 역할로 출연해도 늘 응원해주곤 하셨다. ‘귀공자’의 주연배우로 발탁됐을 때도 그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모르셨다”라며 “영화를 본 뒤 ‘너무 고생했다’고 격려해주셨다. 할머니는 ‘우리 손주 얼굴이 왜 저러냐’며 깜짝 놀라셨고 친구들은 ‘네가 많이 나오더라’고 좋아했다”라는 에피소드를 전했다.

‘귀공자’에서 만난 김선호와 김강우는 강태주의 좋은 롤모델이 됐다. 강태주는 “처음 만났을 때는 연예인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 작품에서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라고 털어놓았다.

김선호는 주연배우로서 여유와 리더십을 보여줬다. 김강우는 현장에서 더 좋은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고민하는 배우의 자세를 가르쳤다.

강태주는 “주연배우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현장 분위기가 달라지는데 선호 선배님은 시종일관 밝고 여유있는 모습으로 현장을 이끌었다. 김강우 선배는 한컷을 위해 고민하고 고뇌하는 모습이 후배로서 멋있었다. 연기의 절반을 배우들이 만들어간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됐다”라고 말했다.

‘귀공자’는 강태주의 연기인생에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됐다. 그는 “만약 박훈정 감독님이 ‘귀공자’의 속편을 만들 계획이 있다면 ‘킹스맨’처럼 귀공자가 마르코를 멋진 킬러로 키워줬으면 좋겠다”라며 “선호 선배님처럼 멋진 수트를 입고 싶다”라고 살포시 속내를 전했다.

mulga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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