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끼익끼익끼익...깨개갱”

오케스트라가 합주 전 화음을 조율하는 시간. 익숙한 현악기 조율음 가운데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아쟁일까. 태평소일까. 국악에 문외한인 3000여 관객들은 이 익숙하지 않은 소리의 근원을 찾아 귀를 쫑긋 세웠다. 지난 11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가수 김수철의 데뷔 45주년 기념 공연 ‘김수철과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 공연 직전의 모습이다.

이날 공연은 데뷔 이후 끊임없이 국악에 애정을 기울이며 25장의 앨범을 냈던 ‘작은 거인’의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88서울올림픽 주제곡으로 쓰인 ‘도약’, 영화 서편제 주제가로 쓰였던 ‘소리길’과 ‘천년학’, 2002년 한일 월드컵 주제곡으로 쓰였던 ‘소통’ 등 오로지 CD로만 들을 수 있었던 위대한 음악세계가 공연장의 소리로 구현돼 관객과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다.

유난히 체구가 작은 김수철은 트레이드마크인 크롭바지에 연미복을 입은 채 관객에게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오케스트라 후방을 가득 매운 수많은 타악기가 눈에 띄었다. 김수철은 이날 공연을 위해 동서양 타악기 60대를 ‘자비’로 주문제작했다. 실상 총 10억원에 이르는 이날 공연 제작비가 그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무려 15년을 준비한 공연이지만 기업의 후원을 받지 못했다 했다.

그렇게 어렵게 열린 공연은 시작부터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바이올린과 트론본, 피리, 대금, 거문고, 아쟁, 북, 좌고, 그리고 기타까지 다양한 악기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때로 높은 데시벨로 소리를 이끌고, 때로 낮은 화음으로 밑받침했다. 앞서 3시에 열린 1회 공연에서는 다소 합주가 맞지 않았지만 두 번째 공연에서는 각자 쓰임이 다른 악기들이 화합의 소리를 빚어냈다.

김수철은 온 몸을 불사르며 지휘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과거 그의 히트곡 ‘정신차려’의 안무처럼 팔을 쭉 뻗은 채 지령을 내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비트가 빠른 곡을 지휘할 때는 단상에서 깡충깡충 뛰기도 했다. 그때마다 연미복을 입은 그의 이마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보다못한 관객들이 안쓰러워하며 “연미복을 벗으라”고 권하자 “우리 단원들에게 혼나요”라고 예의 사람 좋은 웃음으로 응수했다.

공연에는 거인의 뜻에 공감한 가요계 선후배 동료들이 ‘노개런티’로 함께 했다. 큰 키 때문에 가요계에서 ‘거인’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가수 성시경은 “김수철 선배님이 ‘진짜 거인’”이라고 경의를 표하며 ‘내일’을 불렀다.

가수 화사는 특유의 기교를 죽인 채 ‘정녕 그대를’을,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인상적인 이적은 ‘나도야 간다’로 분위기를 한 껏 띄웠다. 김수철 역시 그의 노래에 가만 있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애절한 목소리의 백지영은 ‘왜 모르시나요’를, 김수철의 ‘누나’ 양희은이 호탕하게 ‘정신차려’를 불렀다.

공연의 백미는 사물놀이 거장 김덕수와 함께 한 ‘기타산조’였다. 방탄소년단이 뉴욕 UN본부에서 연설하기 20녀 전, 두 사람이 뉴욕에서 선보인 곡이다. 흡사 불과 물, 창과 방패처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두 사람의 신명나는 음악놀이에 관객들은 무아지경에 빠졌다.

김수철은 자신의 전성기 시절 히트곡을 직접 부르기도 했다. 이날 공연을 열 수 있게 많은 관객이 사랑해준 ‘못다핀 꽃 한송이’, 어린이들이 어른 가요를 부르는 게 싫어 어린이를 위해 만들었다는 ‘날아라 슈퍼보드’, 그리고 온 가족이 함께 부를 수 있는, ‘국민응원가’ 젊은 그대’였다. ‘거치른 벌판으로’라는 전주음이 들리자 장년의 일부 관객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일부 관객들은 젊은 시절처럼 돌팔매질을 하며 목청높여 노래를 따라불렀다.

“지난 45년간 그랬듯, 저는 앞으로도 계속 돈 안되는 음악, 어려운 사람을 위한 음악, 그리고 건강한 음악을 들려드리겠습니다.”

mulga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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