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연이 미디어 산업 심장부의 아성에 도전한다.

미국 TV예술과학아카데미는 16일(한국시간) 로스앤젤레스(LA) 피콕 극장에서 제75회 에미상 시상식을 개최한다.

스티븐 연이 출연한 ‘성난 사람들’은 이번 시상식 미니시리즈(A Limited Or Anthology Series Or Movie) 11개 부분에 이름을 올렸다. 후보는 총 13명이다.

작품상을 비롯해 스티븐 연과 앨리 웡이 각각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있고, 조연으로 출연한 두 배우 조셉 리와 영 마지노가 남우조연상을 놓고 경쟁한다. 이 외에도 감독상과 각본상, 캐스팅상, 편집상, 음향상, 의상상 후보에도 올랐다.

국내에서는 스티븐 연이 ‘오징어게임’(2021) 이정재에 이어 에미상 남우주연상 수상 여부에 초미의 관심이 모인다. ‘성난 사람들’은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도급업자 대니(스티븐 연 분)와 우울한 삶을 살고 있던 사업가 에이미(앨리 웡 분) 사이에서 벌어진 난폭 운전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며, 이들의 일상마저 위태로워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스티븐 연은 난폭 운전을 하고 달아난 사업가 에이미를 집요하게 추격하는 대니를 맡아 예측 불가 복수전을 벌이는가 하면, 이방인의 애환을 얼굴에 담는 가운데 분노를 활용한 블랙 유머로 작품의 공기를 환기하는 등 입체적인 연기로 시청자를 홀렸다.

5세 나이로 미국으로 이민을 간 뒤 배우로 성장한 스티븐 연의 얼굴엔 이방인의 외로움이 스며들어 있다. ‘성난 사람들’ 속 동아시아적 가치에 얽매인 대니와 스티븐 연의 이미지는 더할 나위 없이 잘 맞아떨어졌다. 뛰어난 연기력까지 겸비한 그는 제81회 골든글로브와 제29회 크리틱스초이스 어워즈에서도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한국인, 한국계 외국인 배우의 골든글로브 주연상은 스티븐 연이 최초다.

골든글로브 수상 후 스티븐 연은 “평소 내가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대게 타인과 분리, 고립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 자리에 오르니 다른 사람들부터 떠올리게 된다. 매우 신기한 느낌이고, 마치 ‘겨울왕국’ 줄거리처럼 느껴진다”고 소감을 전했다.

미국 인기 드라마 시리즈 ‘워킹데드’의 글렌 캐릭터를 맡아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스티븐 연은 각종 작품에서 고립된 인물을 표현해 왔다.

‘버닝’(2018)에서는 한국에 온 부자지만, 어딘가 음흉한 이미지 때문에, 주위에서 겉도는 느낌을 드러냈고, ‘미나리’(2021)에서는 미국으로 이주해 농장을 꾸리는 한국인 가장을 표현했다. 조던 필 감독 연출작 ‘놉’(2022)에서는 어린 시절 침팬지에 공격당한 아역 배우 출신 놀이공원 사장 주프를 맡아 극 중 인물들로부터 은근한 멸시를 받았다.

스티븐 연은 미국 배우조합상(SAG Awards)과 감독조합상(DGA Awards)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다. 스티븐 연 외에도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의 셀린 송 감독이 DGA 첫 장편영화 부문 감독상을 두고 경쟁한다.

‘기생충’(2019)을 시작으로 아시아계 작품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지난 2022년에는 ‘오징어게임’이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포함해 6관왕을 달성하며, K-콘텐츠의 저력을 발휘했다. 대다수 한국계 제작 스태프와 배우가 포진한 ‘성난 사람들’이 이번에도 기념비적인 성과를 이룰지 주목된다.

한편, 에미상은 ‘TV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의 상이다. 미국에서 한 해 동안 방송된 TV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상을 수여한다. 이번 시상식은 지난해 9월 열릴 예정이었으나, 지난해 수개월간 할리우드 작가·배우 노조가 파업을 벌인 여파로 올해 1월로 연기됐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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