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요즘 톱배우들은 ‘배 째라’ 식이에요. 특히 시즌2 들어가려는 작품은 엄청 심해요. 자신이 주인공이니, (출연료를) 엄청나게 부르는 거죠. 제작사 입장에서는 시즌1 주인공을 쓰자니 제작비가 껑충 뛰고, 안 쓰자니 이야기가 연결되지 않아 이래저래 고민만 커져요.”

한 매니지먼트사 A 대표는 제작사나 방송사에서 밝힌 톱배우의 과도한 출연료 인상 사안에 대해 크게 공감한다는 뜻을 전했다. 각 드라마나 영화의 제작비는 한정적인데, 톱배우 측이 너무 욕심을 부리다 보니 그 외 배우들은 출연료를 깎을 수밖에 없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방송사나 영화 배급사의 오래된 행태에서 비롯됐다. 각종 제작사가 신인이나 연기파 배우를 주연으로 한 재밌는 기획안을 제출도, 결국 스타급 배우가 출연해야 편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캐스팅이 제작 투자와 직결된다는 것을 인지한 유명 배우들이 몸값을 올리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제작사 수익의 일부 지분을 달라”는 등 무리한 요구도 이어졌다. 그런 가운데 OTT에서 스타급 배우들에게 높은 출연료를 주면서 기존 광고시장이 위축된 국내 방송사와 격차가 더 벌어지게 됐다.

한 매니지먼트 B 대표는 “이제 와 방송사와 제작사가 톱배우의 몸값을 낮춰달라고 말하는 게 사실 우습긴 하다. 이 현상을 만든 게 사실상 방송사와 제작사, 배급사다. 아무리 좋은 기획을 해도 결국 스타를 캐스팅해야 편성을 받곤 했다. 오랜 시간 지속되다 보니 부와 권력이 15명에서 넓게 봐야 50명 정도 되는 배우에게 쏠린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화근인 방송사와 제작사가 제기한 주장이 고깝긴 하지만, 유명 배우에게 너무 많은 힘이 쏠리는 것에 매니지먼트사들도 공감하는 모양새다. 주연급 한두 명을 제외하면, 이른바 3번부터 시작되는 서브남주, 서브여주에 해당하는 배우들은 기존 출연료의 절반만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B 대표는 “잘 받아야 70%다. 만약 2000만원을 받는 배우가 있다면 1000만원으로 깎으라고 한다. 협상도 없고 통보다. 제작사는 ‘이거 받고 하든가, 아니면 하지 말든가’라는 식이다. 톱배우 캐스팅을 위해 다른 배우들이 희생하는 꼴”이라며 “톱배우에겐 끌려다니고, 다른 배우들에겐 고압적이다”라고 말했다.

제작비가 점점 줄어들다보니 각 드라마에 특이한 패턴이 생겼다. 메인 주인공이 이름값이 높으면 상대 배우는 비교적 신인급이나 이름값이 적은 배우들이 차지하는 것이다. 또 대체로 주인공의 친구 역할이 줄어드는 추세다. 한 주인공 옆에 친구들이 두 세 명은 꼭 있었다면, 요즘에는 한 명이거나 한 명도 없는 사례가 많다. 조연급이나 신인 배우들의 설 자리가 더욱 줄어들고 있다.

한 제작사 관계자 C는 “제작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물을 줄이게 된다. 주인공이 더 많은 몫을 담당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며 “남자 주인공이 몸값이 비싸면, 여자 주인공은 신인을 기용하는 것은 최근 도드라진 추세다. 모두 제작비의 한계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B 대표는 “요즘 메인 주인공급 배우들은 물론, 조연급 배우들도 기회가 없다. 예전에는 1년에 10작품 이상 참여하는 다작 배우가 꼭 있었는데, 요즘엔 세 작품만 해도 많이 하는 것”이라며 “사실 주연이든 조연이든 다음 작품이 없다”고 말했다.

제작사와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들끼리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로 “2026년까지는 견뎌보자”고 한다. 2026년은 돼야 대중 문화 업계가 정상화될 것이라는 예측에서다. 올해와 내년에 수많은 제작사와 매니지먼트사가 도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역사상 가장 힘든 보릿고개라는 관측이다.

매니지먼트사 D 이사는 “작년 초만 해도 들어가는 작품이 160편이 넘었다. 올해는 신작이 40편 정도 밖에 안 된다. 제작사는 편성이 되지 않아서 힘들고, 매니지먼트사는 배우들이 출연하지 못하고 있다. S급으로 분류되는 배우들도 다음 작품이 없다”며 “요즘에는 편성을 받는 배우와 그렇지 않은 배우로 나뉜다. 편성은 해외 투자가 기준이다. 편성 받는 배우들이 사실상 대중문화계의 흐름을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B대표는 “최근 제작사와 방송사가 밝힌 ‘톱배우 출연료’에 대한 주장은 많은 매니지먼트사가 환영할 만한 메시지다. 다만 마치 그 메시지가 ‘범인 찾기’ 식의 남 탓이 아니라, 건강한 업계를 만들기 위한 논의라면 더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장 출연료를 많이 못 주더라도, 흥행에 따른 출연료 인센티브제나 해외 판매 기여에 대한 인정 등 배우들의 가치를 인정해 줄 여러 고민을 함께한다면 이 위기를 같이 힘을 모아 헤쳐 나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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