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살면서 누구나 좌절의 순간을 경험한다. 앞날이 막막해 울분을 토하며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냐’며 원망한다. 반면 최악의 상황을 회생의 기회로 삼고 다시 일어나 전진하는 이들도 있다.

사회생활에 있어 ‘나이’는 때론 ‘무기’가 될 수 있고, 반대로 ‘약점’이 되기도 한다. 특히 특정 연령대의 배역이 주를 이루는 무대 위 배우들에게는 예민한 부분이다.

올해 36세인 뮤지컬 배우 이해준. 앙상블 배우로 시작해 중소극장을 거쳐 이젠 모두가 인정하는 대극장 배우가 됐다. 또래 배우들에 비해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그가 걸어온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들이었다. 불혹을 앞두고 오히려 ‘40대 배우’로서의 삶이 기대된다고 말한다.

◇ 대극장 두 작품 ‘주역’의 일상…‘최고’가 될 수 있었던 무한한 힘

이해준은 현재 뮤지컬 ‘프랑켄슈타인’과 ‘베르사유의 장미’에 동시 출연하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먼저 시작한 ‘프랑켄슈타인’은 3회차만 남긴 상황. 지난달 16일 개막한 ‘베르사유의 장미’의 대장정은 현재진행 중이다.

전혀 다른 두 캐릭터를 소화하면서 순간 대사가 헷갈릴 때도 있었다. 그래서 항상 그의 손에는 대본이 쥐어져 있다. 주변에서 이해준에게 “아직도 대본을 갖고 다니느냐”라고 묻기도 하지만, 완벽한 무대를 만들기 위한 그만의 최선의 준비다.

‘이모 집(블루스퀘어)’과 ‘고모 집(충무아트센터)’을 오가는 기분이라는 이해준은 “‘프랑켄슈타인’ 공연에서 ‘베르사유의 장미’ 넘버 ‘이대로 아침까지’ 가사를 읊을 뻔했다”라며 “공연 전날 잠들기 전과 다음 날 한 번 더 대본을 확인해야 마음이 놓인다. 첫 공연부터 마지막 공연까지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가 주 4~5회 무대에 오르면서 가장 부담스러운 부분은 체력이다. 이해준은 “체력이 안 되면 걱정도 못 하겠더라. ‘프랑켄슈타인’ 무대에서 상체 탈의를 해야 해서 처음 몸을 만들었다. 덕분에 건강은 얻었다”라며 “공연이 끝나면 운동하러 간다. 이렇게 운동하면 오히려 다음날 체력이 돌아온다”라고 풀이했다.

◇ 갈비뼈 골절에도 무대에 오르겠다는 의지…대배우 탄생의 신호탄

이해준은 뮤지컬 업계에서 ‘노력파’로 정평이 나 있다. 타고난 재능이 기반을 세워줬고, 무대를 향한 열정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다.

지난해 뮤지컬 ‘모차르트’를 통해 대극장 주연배우로서 첫발을 내디뎠던 날, 불의의 사고가 터졌다. 1막을 마치고 갈비뼈에 멍이 드는 등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다음날 병원 진단 결과, 갈비뼈 두 개가 부러진 것. 배우로서 그의 앞날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해준은 이 사실을 제작사에 전달했다. 회사는 내부 회의를 거친 후 그에게 이 작품이 전부는 아니라며 하차를 권유했다. 그러나 그는 일주일의 시간을 달라며 그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회사도 이해준의 간절한 마음을 읽고 캐스팅 변경 등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

7일간의 집중 치료를 받고 돌아온 이해준은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해봤다. 공연 전 링거(무통 주사)를 맞고 무대에 올랐다. 3시간 정도 참을 수 있었는데, 이후 고통이 심해 잠이 안 왔다”라며 “병실만 아니지 쉬는 날엔 집에서 아예 누워만 있었다”라며 그때 상황을 떠올렸다.

복대로 갈비뼈를 그나마 보호했지만, 복식호흡 탓에 고통은 피할 수 없었다. 이 모습을 지켜본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은 안쓰러운 마음에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부상은 그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그와 함께 무대를 꾸밀 수 있도록 동선을 바꾸는 등 그를 도왔다.

그렇게 ‘모차르트’는 무사히 대장정의 막을 내릴 수 있었다. 불굴의 의지로 다시 일어난 이해준과 ‘모자르트’ 팀이 만들어낸 합작이었다.

마지막 공연까지 책임질 수 있었던 이해준은 “이 직업을 진짜 사랑하는구나, 제작진과 나 자신, 팬들과의 약속이 있었기에 맡은바 끝까지 해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라며 “매번 공연이 끝나면 앙상블 배우들에게 인사한다. 나로서는 매번 감사하다고 얘기한 것”이라고 했다.

◇ 공연장에서 모두와 함께하는 ‘해준’…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결같은 마음가짐

이해준은 ‘베르사유의 장미’에서 프랑소와 드 자르제 가문의 딸로서 왕실 근위대장이 된 소꿉친구이자 주인인 오스칼을 지키는 앙드레 그랑디에 역을 맡았다.

앙드레는 프랑스 베르사유의 궁전처럼 화려하지만, 인간 본연의 모습과 대비되는 가슴 아픈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이다. 극중 인물이지만, 이를 안타깝게 보는 이해준은 “사람 아래 사람 없다. 각질 많은 사회에 또 다른 시선으로 교훈을 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켄슈타인’은 곧 막을 내리지만, 앞으로 10월까지 앙드레로서 릴레이를 이어간다.

이해준은 “첫 공 때의 떨림과 긴장감을 막 공까지 갖고 가야 하므로 캐릭터에 더 비중을 실으려고 한다. 라이브이긴 하지만, 반복되는 공연 매너리즘에 빠지면 안 되기 때문”이라며 “회차를 거듭할수록, 또 외부 해석으로 망가지는 경우를 봐왔다. 난 그런 배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배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후부터 주연이든 작은 역할이든 캐릭터 해석에 간절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배우의 삶을 앙드레의 넘버 ‘너라면’으로 표현했다. “앙드레가 오스칼에게 ‘가서 사람은 쉽게 말하지, 평범하게 살아. 우린 어느 정도 기준이 있어. 보통 사람이 돼야 해’라고 노래한다. 그런데 배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배우 이해준만이 표현할 수 있는 배역으로 만들어야 한다”라며 “그것이 없어지면 무대에서 편하지 않아, 내가 아니다. 나만의 장점으로 앞으로 이 일을 하기 위해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이라고 덧붙였다.

‘이해준’은 예명이다. 그는 배우로서 성공하기 위해 사주학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스님으로부터 이름을 받았다. ‘함께 해(偕)’와 ‘법 준(準)’으로, 이해준은 “혼자 할 수 없는 직업인 나에게 딱 맞는 이름”이라고 소개했다. 공연장이라는 정해진 틀에서 스태프, 배우, 관객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삶으로 풀이했다.

불혹이 더 기다려진다는 이해준은 배우 신성록이 가진 작품을 대하는 자세와 인간적인 면모를 닮고 싶다고 했다.

이해준은 “내가 스스로 만족했을 때 교집합이 잘돼야 행복할 수 있다. 상대방은 행복한데,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오래 할 수 없다. 그래서 오늘도 조그마한 행복부터 찾으려고 한다”라며 긍정 바이러스를 심고 있다. gioi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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