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국민 불륜녀’라는 수식어가 주어졌다. 내연녀를 연기한 배우에겐 찬사나 다름없다. 상사의 남편과 외도를 저지르고도 죄의식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최사라를 훌륭히 표현한 덕이다. 혜성 같이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퇴장했다. 워낙 임팩트가 강해 관심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SBS ‘굿파트너’ 최사라를 연기한 한재이다.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한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한 불륜의 장본인 최사라는 “사랑은 교통사고 같은 것, 피할 수 없는”이라며 당당했다. 김지상(지승현 분)이 자신이 모시는 상사 차은경(장나라 분) 변호사의 남편인 걸 알면서 외도를 저질렀다. 차은경에게 모든 것을 들켰을 때조차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변호사님이 지상을 외롭게 한 죄가 있지 않냐”고 따져 물었다.

이 뿐이 아니다. 최사라는 자기 욕심만 앞세우는 철저히 이기적인 인물. 지상에겐 사랑을 갈구하면서 지상이 사랑하는 딸 재희(유나 분)를 연적으로 생각했다. 스무살 넘게 차이나는 아이에게 질투를 느끼고, 어떻게든 갈라놓으려고 음모를 꾸미는 부분은 분노를 유발했다. 지상과 단 둘이 살기 위해 초등학생인 재희를 불러 “엄마랑 살고싶다 말하라”라고 강요하는 대목은 가히 충격적이다. ‘분노 유발자’ ‘국민 불륜녀’라는 수식어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재이는 표독스러운 얼굴로 이야기의 갈등에 힘을 실었다. 모든 것이 들통나 결국 김지상에게도 버림받은 몸이 됐지만, 잔상은 여전히 깊게 남아있다. 자신은 죄가 하나도 없다는 듯 어떤 순간에도 당당할 뿐 아니라, 차은경을 만났을 때조차 사랑을 운운하는 장면에선 혈압마저 상승하는 느낌이다. 한재이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내연녀의 얼굴을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옆에 두고 싶지 않을 정도로 불편한 최사라에게 보편적인 인간성도 부여했다. 유산을 겪으면서 슬퍼하는 대목에선 이전엔 볼 수 없었던 모성애도 그려냈다. 쉽게 용서할 수 없는 내연녀지만, 그 역시 사랑받고 싶은 여자이자 사랑을 주고 싶어했던 엄마의 모습이라는 걸 담아냈다. 매우 입체적인 캐릭터 덕분에 시청자들은 이야기에 몰입하기 쉬웠다.

한재이는 지난 2012년 영화 ‘흔적’으로 데뷔했으나, 이렇다 할 대표작이 없었다. 넷플릭스 ‘마스크걸’에서 춘애로 등장한 게 가장 굵직한 필모그래피다.

하지만 이미 업계에선 연기력이 출중한 배우로 정평이 나 있었다. 특히 홍상수 감독의 뮤즈라 할 정도로 ‘우리, 선희’ ‘누구의 딸도 아닌 혜원’ ‘밤의 해변에서 혼자’ ‘풀잎들’ 등에 출연해 안정적인 연기력을 펼쳤다. 그날 아침 나오는 대본에 맞춰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난이도가 높기로 유명한 홍 감독의 작품에 연속으로 출연한다는 건 연기력이 검증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 능력을 ‘굿파트너’에서 쏟아낸 셈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시청자의 분노를 일으킬 정도로 뻔뻔한 내연녀 역을 상당히 잘 연기했다. 특히 모성애의 이미지도 그려내면서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