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호
홍명보 감독이 이끈 축구대표팀이 지난해 6월 브라질 월드컵 본선 알제리와 조별리그 2차전에서 추가골을 내주고 있다. 스포츠서울DB

[스포츠서울] 심리학자 에드윈 로크의 목표설정이론은 개인이 의식적으로 얻으려고 설정한 목표가 동기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다. 지난 해 브라질월드컵에서 참패의 아픔을 맛본 ‘홍명보호’가 실패한 주요 원인도 명확하지 않은 목표설정에 있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대한축구협회는 9일 ‘2014 브라질 월드컵 대한민국 대표팀 출전 백서’를 발간하면서 실패를 교훈으로 삼기 위한 냉정한 평가와 반성을 담았다고 밝혔다. 문제점 도출을 위해 5개월간 선수와 코치진, 축구협회 관계자, 언론인 등 47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객관성을 확보하려고 외부 스포츠 컨설팅업체에 백서 제작까지 맡겼다. 축구협회가 월드컵 백서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뿌리부터 흔들렸다…상이한 목표 인식
단연 눈에 띄는 건 기초가 돼야 할 목표설정에 있어 구성원들이 상이한 인식을 했다는 점이다. 백서에선 월드컵을 앞두고 명확한 목표 설정이 돼 있지 않아 내·외부적으로 혼란이 있었던 점을 거론했다. ‘언론에서 지난 월드컵보다 한 계단 뛰어오른 8강을 목표로 설정했다. 반면 코치진과 선수들의 목표는 16강 진출이었다.’ 감독, 선수단 내부에서 구체적인 목표를 적시하지 않고 대략 제시하다 보니 그 차이로 혼란을 안고 출발했다는 것이다. 또 성적 중심의 목표 설정시 미디어와 팬들이 자연스럽게 성적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환경을 거론하면서 ‘성공적인 월드컵은 무엇인가에 대한 축구협회 차원의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리더의 부재도 재차 강조했다. 선수단 분위기는 좋았지만, 실질적으로 내부에서 중심을 잡고 조언자 구실을 할 구심점이 없었다.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 멤버를 중심으로 꾸려진 홍명보호의 평균 연령은 25.9세로 역대 월드컵대표팀 중 가장 어렸다.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젊은 선수가 즐비하다 보니 들뜬 분위기가 이어졌고, 그라운드에서도 흔들릴 때마다 중심을 잡을 리더가 없었다는 지적이다. 또 감독과 선수 간의 직접적인 소통보다 주장 혹은 제3의 인물을 거치는 간접적 방식을 활용한 것도 목표의식 공유에 일차적 문제가 됐다.

◇하나만 보고, 둘은 보지 못했다
조별리그 첫 상대 러시아에 편향한 전력 분석은 알제리, 벨기에 등 나머지 팀의 정보 부족으로 이어졌다. 전력분석 수준이 경기별로 달랐기에 상대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고, 유연한 전술도 나오지 않았다. 백서는 ‘홍명보호는 3경기에서 원톱의 활약이 중요한 4-2-3-1 포메이션으로만 나섰다’며 ‘원톱(박주영) 선수 컨디션 난조시 대체 선수가 부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대회 직전 부상선수 불참으로 전술변경을 시도한 네덜란드의 사례를 들었는데, 애초 포백을 사용했으나 실전에서 3백으로 실리적인 축구를 했다. 특히 멕시코와 16강에선 3백으로 나섰다가 쿨링브레이크 타임 후 공격적인 포백으로 바꿔 2-1 승리의 밑거름이 된 것을 강조했다.
팀 전력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해외파 선수 관리에 있어서도 본격 준비기간 외엔 국내 정보망에 의존한 것도 실패 요인으로 지적했다. 실제 브라질에선 유독 해외파가 힘을 쓰지 못해 K리거를 제대로 중용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큰 대회를 앞두고 체력과 심리적 상태 등 기본 경기력 외에 컨디션에 영향을 끼칠 요소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2018 러시아 로드맵, 기초 공사부터 다시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위해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백서는 러시아월드컵에 대한 제언을 통해 ●단순히 성적이 아닌 문화형성이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대표팀 운영과 지원은 시스템 구축뒤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면서 대표팀지원팀 중심으로 일관된 조직 편성이 필요하며 ●기술위원회도 대표팀 지원을 위한 조언자 역할을 제대로 해야 된다고 밝혔다. 이밖에 스포츠 심리 전문가를 팀 내 고용해 지속한 상담으로 선수들의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일 ,상시로 해외파를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일 등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축구협회는 이번 백서 발행으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국내에 성숙한 축구 문화를 조성하는 데 힘을 기울일 계획이다.

김용일기자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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