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동생하더니 몽땅 바친 유부녀





남편 자식 다버리고 여보 삼고 지냈는데


젊은 정부와 그 애인에게 『다시는 괴롭히지 않는다』는 각서를 써주고 20만원을 받아든 30대 여인은 엉엉 통곡했다. 남편과 자식들을 버리고 이웃 하숙방 학생과 사랑에 빠졌던 중년여인-돈도 마음도 몸도 다 바친 사랑이었으나 끝내 그 젊은 임은 마음에서 영원히 떠나 버리고 만 것.





밀회 거듭할수록 20살위 남편이 싫어져


용산구 후암동에서 왕(王)모씨(55)의 아내이며 4남매의 어머니로 남부럽지 않게 살던 홍팔자(洪八子)여인(35·가명·서대문구 북가좌동)에게 비극이 싹튼 것은 66년 3월 15일.


홍여인을「누나」라고 부르며 따르던 이웃의 하숙생 S대학 법학과 3학년 남정식(南正植)씨(30·가명·성북구 상계동)를 알면서 부터였다.


『따르릉 따르릉』


어느날 막 설겆이를 끝내고 막 방에 들어서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아, 여보세요』


『난데요, 누난 지금 뭘하고 있수?』


『뭘하긴 그냥 이렇게 앉아있는 거지』

『집에서 그렇게 죽치고 앉아있지 말고 나하고 오늘 극장구경이나 하며 바람이나 쐬.어젯밤 누나가 우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마음 아팠는데…』


홍여인은 순간 어젯밤 남편과 싸움을 한 사실을「미스터」남이 알고있는 것이 쑥스럽기도 했지만 잠을 한숨도 못잤다며 격려를 해줄 때는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그럴까. 어디서 만날까?』


『「아카데미」 극장옆 S다방에서』


찰칵하고 전화는 끊겼다.


여느때면 청계천 1가에서 구두상점을 하는 남편의 곁에서 함께 장사를 하며 일을 도와야 할 낮12시.

홍여인은 영화관에서 구경을 하고 나와 「미스터」남과 함께 우이동 S산장에서 점심을 했다.


『누나 아무리 돈도 좋지만 그 늙은 영감장이하고 어떻게 같이 살아?』


『어떡허니, 어린것들도 있고……』


「미스터」남은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를 통해 홍여인의 처지를 낱낱히 들어 알고 있었다. 홍여인의 남편은 청계천에서 구두상을 하는 왕모씨. 이북에 처자식을 두고 단신월남한 왕씨는 20살아래인 홍여인과 10년전 재혼, 아들셋 딸하나를 낳고 중류 이상의 생활을 했다.


중학교를 간신히 졸업한뒤 영등포에 있는 T방직 여공생활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홍여인은 이웃아낙네의 소개로 왕씨와 결혼을 했던 것.


그러나 남편은 주벽이 심한데다 성격이 거칠어 툭하면 때렸다. 홍여인은 또한 남편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영감 때문에 마음이 늘 들뜬 가운데 성(性)의 쾌락을 갈망했다.


『누나 자기 팔자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어떤 결심을 해봐』


(어떤 결심?)




”이래선 안돼” 뉘우치면서 2년동안을 불타는 매일


홍여인은 대꾸를 할 기력을 잃고 있었다.


홍여인의 파르르 떨리는 손목을 「미스터」남이 잡았다.


<이래서는 안돼> 홍여인은 마음속으로 다짐했으나 어느새 욕정에 들뜬 30대여인의 육체는 젊은 총각의 품속에서 활활 타고 있었다.


산장의 역사가 이루어진 뒤부터 두사람은 남편몰래 자주 만났다.


지금까지 남편에게서 느끼지 못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애틋함을 「미스터」남에게서 느낀 홍여인은 남편과의 잠자리가 오히려 지긋지긋해졌다. 홍여인은 남편이 가게로 나가면 으례「미스터」남의 하숙방에 들어가 놀았다.


남들이 눈치챌까봐 주인마나님을 끌고들어가 함께 화투놀이를 했다. 홍여인은 이럴 때마다 남편과 자식들에게 못할 일을 하고 있구나, 다시는 그를 만나지 말아야지, 하고 뉘우치기도 했단다. 그러나 달아오르는 육체는 「미스터」남 없이는 살 수 없었던 것. 홍여인은 제구실을 못하는 남편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뭐 이런 남자가 있어!』


남편은 늙어버린 자신의 육체를 탓하며 한숨만 쉬었다.


홍여인은 그럴적마다 「미스터」남을 불러내 일류「호텔」과 여관 등으로 끌고 다니며 육체의 향연을 벌였다.


『「미스터」남 내가 집을 뛰쳐나오면 나를 받아 주겠어?』


『원 별소리를 다 하는군.이혼만 하고 나오면 당신의 행복은 내가 책임을 질테야』


『정말?』


홍여인은 「미스터」남을 왈칵 껴안기 일쑤.


이런 생활을 2년. 이들의 비밀도 오래가지 않았다.


7월초순 어스름 저녁. 서울 청량리역 앞길을 거닐던 이들은 남편 왕씨의 눈에 띄었다.


끝내 이혼하고 새살림을


왕씨는 부인과「데이트」를 하는 장본인이 이웃에 사는 대학생이라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본체 만체 집으로 돌아와 홍여인에게 다그쳤다.


『당신 왜 그녀석 하고 다니지?』


『같이 다니면 어때요?』

찰싹, 남편 왕씨는 홍여인의 뺨을 갈겼다.


『남자 구실도 못하는 주제에 때리긴 왜 때려요』


『뭐라고? 저런 년이』

이 싸움은 10년동안 동거해온 두 부부를 갈라놓는 계기가 됐다.


남편 왕씨는 돈 50만원을 홍여인에게 주고 합의 이혼을 했다.


집에서 나온 홍여인은 뛸것만 같은 흥분속에 홍제동에다 15만원짜리 전셋방을 얻어 「미스터」남과 새살림을 차렸다.

대학을 졸업한 「미스터」남은 직장을 얻지못해 1년 남짓 홍여인에게 더부살이를 했다.


날로 식어간 그이의 마음 알고보니 약혼녀 버젓이


그래도 홍여인은 생전 처음 삶의 보람을 느끼는 것같아 즐거웠다.


홍여인은 1년동안 두번이나 아기를 가졌다.


그럴 때마다 「미스터」남은 경제적인 이유를 내세워 아기를 떼게했다.


또 혼인신고를 조르는 홍여인에게 조급하게 서두를 것보다 자리를 잡고난뒤 친구들 앞에서 떳떳이 식을 올리자고 했다.


그러나 홍여인은 「미스터」남이 자꾸만 자기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홍여인은 「미스터」남의 마음을 붙잡아 둘 궁리를 했다.


홍여인은 「미스터」남에게 돈 50만원을 줘「메리야스」공장을 차리게 했다.


새 양복도 철따라 마춰입혔다. 그러나 경험없이 시작한「메리야스」공장은 6개월을 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고 말았다.

「미스터」남은 술을 마시고 들어올 때가 많았고 외박이 잦아졌다.


처음에는 사업에 실패한 좌절감을 달래려니하고 생각도 했으나 「미스터」남의 태도는 점점 이상했다. 지난 16일 참다못해 홍여인은 「미스터」남의 뒤를 밟았다.


설마하고 내친 발걸음이었으나 이날 하오 2시께.


「미스터」남은 후암동 어느집에 들러 아가씨를 데리고 나와 팔짱을 끼고 남산공원쪽으로 걸어간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눈앞이 캄캄했다. 그 아가씨가 벌써부터 「미스터」남이 사귀어 오다 약혼한 김(金)모양(24)이라는 것을 안 것은 그 후의 일.


이것이 남편 자식을 버린 중년여인이 다다른 사랑의 종막이었다.


<안태석(安泰錫) 기자>


<서울신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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