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수[포토]
피겨 여자 싱글 국가대표 임은수가 지난달 17일 본지와 설날 인터뷰 도중 손가락 하트를 그려보이고 있다. 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기억에 남을 설날 만들어야죠.”

귀엽고 깜찍하던 소녀가 어느새 성숙미 넘치는 고교생으로 커서 피겨 팬들 앞에 나타난다. 김예림, 유영과 함께 한국 여자 피겨의 미래를 책임질 것으로 기대받고 있는 임은수(16)가 주인공이다. 지난해 말 회장배 랭킹대회 여자부 싱글에서 우승해 유럽 외 4개 대륙 대표들이 미국 애너하임에 모여 겨루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대륙선수권대회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임은수는 지난 13일엔 종합선수권에서 시니어 연령 선수 중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아 오는 3월 일본 사이타마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단 한 명의 한국 여자 싱글 스케이터가 됐다. 한국 피겨를 넘어 체육계가 낳은 최고의 스타, 김연아를 가장 닮았다는 평가를 받는 선수가 바로 임은수다. 넘치는 표현력과 차분한 연기, 여기에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수려한 외모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종합선수권 뒤 베이스캠프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본지와 만난 임은수는 연기 의상이 아닌 예쁜 정장을 맵시 있게 차려 입고 나와 설날 인사를 했다. “설날엔 항상 대회에 출전하느라 바빴지만 이번처럼 떡국도 못 먹는 설날은 처음”이라는 그는 “그런 만큼 기억에 남는 설날을 만들고 싶다. 연휴 기간과 그 직후에 열리는 4대륙선수권에서 후회 없는 클린 연기를 해내고 싶다”고 자신과 약속했다.

임은수[포토]
피겨 여자 싱글 국가대표 임은수가 지난달 17일 본지와 설날 인터뷰 도중 두 팔로 하트를 그려보이고 있다. 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

임은수는 2018~2019시즌 시니어 무대에 데뷔했다. 몸이 달라지고 부상도 생기면서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는 시니어 첫 시즌이지만 임은수에겐 잊지 못할 겨울이 되고 있다. 아시안 트로피 금메달, US 클래식 은메달로 국제대회 워밍업을 마친 임은수는 지난해 11월18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끝난 ISU 그랑프리 시리즈 러시아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해 2009년 김연아 이후 9년 만에 한국 여자 피겨에 그랑프리 메달을 안겨주는 역사를 썼다. 피겨하면서 가장 뿌듯한 순간으로 주저 없이 러시아 대회를 꼽은 임은수는 “메달을 목표로 삼긴 했지만 욕심 내진 않았다. 일주일 전 그랑프리 일본 대회에 참가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도 2주 연속 연기는 힘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자고 했는데 쇼트프로그램에서 실수를 많이 해서 마음을 비운 것이 오히려 잘 됐다”고 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6위에 그쳤던 임은수는 프리스케이팅에서 스위스와 카자흐스탄, 일본 선수들을 한꺼번에 제치고 시상대에 올랐다. “시니어에 와서 보니 톱스케이터들이 많아 신기했다”는 그는 “멀게는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해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목표다. 평창 올림픽을 관중석에서 직접 봤는데 언젠가 서야하는 무대라고 생각하니까 내가 긴장되더라. 하지만 당분간은 올림픽보다는 ISU 주요 대회에서 메달을 많이 따고 싶다”며 이젠 자신이 ‘톱스케이터’ 반열에 들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KB금융 전국 남녀피겨스케팅 임은수, 우아하게[포토]
임은수가 지난달 23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18 KB금융 전국 남녀피겨스케이팅 회장배 랭킹대회 겸 2019 피겨 국가대표 1차 선발전’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

임은수의 새 도전이 바로 4대륙선수권이다. 특히 이번 대회는 임은수가 훈련하는 미국 LA 인근 애너하임에서, 설날 연휴 직후인 7~10일 열려 의미가 깊다. 그는 “설날에 열심히 훈련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언젠가는 넘어야 할 점수, 200점을 겨냥하고 있다. ISU가 공인하는 국제대회에서 그가 받은 최고점은 지난 11월11일 끝난 그랑프리 일본 대회에서의 196.31점이다. 당시 그는 6위를 차지했다. 결국 200점을 돌파해야 어떤 국제대회에 나서도 입상권에 갈 수 있다는 뜻이다. 임은수는 200점을 묻는 질문에 “이제 4대륙선수권과 세계선수권 등 중요한 두 대회가 남아 있다. 꼭 클린 경기로 마무리하고 싶다”고 했다. ‘클린=200점 이상’인 셈이다. 임은수는 “설날 연휴와 주말이 이어지면서 많은 분들이 내 연기를 텔레비전을 통해 보실 것 같다”며 임은수란 이름 석 자를 더욱 알리는 계기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임은수[포토]
피겨 여자 싱글 국가대표 임은수가 지난달 17일 본지와 설날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

임은수는 3월엔 어엿한 고등학생이 된다. “고등학생이란 것을 나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시간이 빨리 갔다. 그 만큼 스케이트를 오래 탔다. 다른 것보단 친구들과 함께 지낼 기회가 적어 아쉽다”며 스케이터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쿠키 만들기가 오랜 취미인 그는 요즘은 화장품에 관심이 많은 숙녀로 변신하고 있다. 그는 “피겨가 운명임을 느낀 적이 있나”란 질문에 곰곰히 생각하더니 “지난해 발가락 골절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에서도 목표한 것을 결국 이루는 일이 많았다. 그럴 때 나와 피겨가 잘 맞는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털어놨다. 같은 소속사로 종종 조언을 듣는 대선배 김연아는 어려울 때 힘이 되는 존재다. “연아 언니랑 닮았다는 말을 듣기는 하지만 아직은…”이라며 갈 길이 멀다는 뉘앙스를 내비친 그는 “연아 언니는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조언을 많이 해주신다.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둘이 닮은 것이 하나 더 있었다. 힘들 때 마음 속에 새겨넣는 글귀가 똑같았다. 임은수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란 생각을 자주 한다”고 했는데 김연아가 좋아하는 말과 같다고 하니 살포시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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