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포토]홍명보 감독, '이대로 탈락인가...'
[스포츠서울] 27일 오전(한국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의 아레나 데 상파울루에서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 H조 예선 한국과 벨기에의 경기에서 홍명보 감독이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내린 뒤 벤치로 돌아가고 있다. 2014. 6. 27. 상파울루(브라질)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월드컵은 경험의 장이 아니다. 4년 동안 해당 국가의 축구 철학과 기량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증명하는 무대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 나선 홍명보호는 1998 프랑스 월드컵 이후 16년 만에 무승 부진을 떠안으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를 대표해서 출전한 일본, 호주, 이란 모두 승리 없이 몰락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브라질의 참패를 반면교사 삼아 장기적으로 재건 로드맵을 세우지 않으면 아시아는 영원한 축구 변방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 체력은 기본, 개인전술은 필수
한국 축구가 이전까지 월드컵에서 힘 있는 유럽, 개인 전술이 뛰어난 남미, 아프리카 대륙 선수들을 상대로 선전을 펼친 건 이를 만회할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술적 열세를 채우기 위해 전방부터 강도 높은 압박이 있었고 한 발 더 뛰는 응집력이 뒷받침됐다. 이 모든 건 철저한 체력적인 대비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이번 대회 조별리그 3경기에선 모두 후반 중반이 지나면서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중앙 수비수 홍정호를 비롯해 일부 선수는 후반 초반부터 다리 경련으로 쓰러지는 등 온전한 몸 상태가 아니었다. 조별리그 전체 선수 개인별 누적된 주행거리에서도 10위권 내에 아시아 국가 중 한국 선수만 없다. 2년 전 런던올림픽 동메달 세대가 주력으로 뛴 한국이지만 당시보다 체력적으로 덜 준비됐다 보니 90분 내내 상대를 압박할 수도, 압도할 수도 없었던 게 사실이다. 또 개인 기술과 조직력을 함께 발전시키지 않으면 국제무대에서 통할 수 없음을 확인했다. 축구 전문가들은 한국 선수 중 손흥민 외엔 문전에서 상대 수비와 일대일 경합을 할만한 선수가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문전에서 부분 전술이 통할 리가 없었고 위협적인 슛도 중거리 슛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 경험 있는 리더의 존재
역대 월드컵에 출전한 대표팀의 평균 연령 중 가장 어린 26.1세였던 홍명보호다. 30대 선수는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않은 중앙 수비수 곽태휘(알 힐랄) 뿐이었다. 큰 무대에서 필요한 경험 있는 베테랑의 부재에 대한 우려가 컸는데 현실이 됐다. 4골을 내주며 무너진 알제리와 2차전에선 베테랑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경기에 나선 태극전사들은 전반 26분 만에 선제골을 허용한 뒤 급격히 흔들렸다. 1-1로 비긴 러시아와 1차전보다 공격 지향적인 움직임을 펼치면서 수비진의 공간이 많았다. 이 부분을 조율하거나 선제골 허용에도 동료들을 독려하는 존재가 없었다. 연거푸 10여 분 사이에 두 골을 더 얻어맞으며 무너졌다. 브라질에 가기 전 미국 마이애미에서 담금질할 때 그라운드에서 선수 간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동갑내기’ 중앙 수비 조합을 비롯해 대부분 런던 세대로 꾸려졌지만 정작 그라운드에서 자신의 플레이를 하기에 바빴다. 원정 첫 16강에 성공한 4년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에선 그라운드에 박지성이 있었고 벤치엔 안정환 이운재 등 베테랑들이 후배들과 함께했다. 이번 대회에선 보이지 않는 다리 구실을 하는 리더가 없었다.

◇ 해외파의 관점 변화, 자국리그 UP
10여 년 전과 비교해서 유럽 주요 리그에서 뛰는 능력 있는 해외파 숫자가 늘긴 했지만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아직 아시아 축구는 큰 무대를 경험한 해외파 요원에게 치중한 전술, 전략을 짜는 편이다. 홍명보 감독도 소속팀에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한 선수는 대표팀에 들어올 수 없다는 원칙을 깨고 전술적으로 유용하다고 판단 아래 박주영을 발탁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최전방을 책임진 박주영은 극도의 부진 속에 벨기에와 최종전에선 아예 부름을 받지 못했다. 또 구자철 이청용 홍정호 등 주력 요원들도 소속 리그의 시즌을 마친 뒤 합류한 터라 정상적인 컨디션을 갖추기 어려웠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월드컵에서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스페인, 잉글랜드,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조별리그에서 나란히 탈락의 고배를 마신 강국들도 5월 중순까지 이어진 리그에서 힘을 뺀 선수들로 꾸려져 월드컵에 정신을 쏟아부을 수 없었다. 홍명보호는 1골 1도움을 올린 이근호를 비롯해 김신욱 김승규 등 K리거의 활약으로 그나마 위기를 넘긴 적이 많았다. 선수는 뛰어야만 경기력이 유지되고, 가장 좋은 흐름에 놓인 자가 월드컵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

김용일기자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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