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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호가 ‘2019 IFBB 프로리그 몬스터짐 프로’에서 완벽한 근육을 뽐내고 있다.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글·사진 이주상기자] 장면 두 가지.

첫 번째.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체육관의 문을 열자 영어로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건장한 아시아인 두 사람이 ‘프로페서(professor)’ 또는 ‘서(Sir)’라는 호칭을 써가며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시아인은 대만 출신의 보디빌더인 잭 리와 마커스 리였다. 두 사람 모두 대만을 대표하는 국가대표 보디빌더였다. 내년에 열리는 올림피아에 출전하기 위해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두 선수를 정성스레 지도했다.

두 번째. 그와 인터뷰를 하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다정다감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이 영락 없이 아내의 전화임을 짐작케 했다. 요즘 20대들에게도 ‘닭살’이 돋을 정도로 진한 애정이 느껴졌다.

멋진 스승, 다정한 남편인 그는 김준호(50)다. 한국 보디빌딩, 피트니스 역사에서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불리는 선수다. 50을 넘겼지만 밝게 빛나는 은발이 없었다면 20대, 30대라고 착각할 정도로 청춘의 모습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보디빌딩 무대에 오른 후 30년 넘게 왕좌의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에게 ‘최초’라는 단어는 흔한 수식어다. 최연소 ‘미스터 YMCA’, ‘서울 그랑프리’, ‘미스터 코리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는 한국 보디빌딩은 물론 아시아 보디빌딩 사상 올림피아에 진출한 첫 번째 선수이기도 하다. 지난 2015년 보디빌더에게는 꿈의 제전인 올림피아에 진출 한 이후 내리 3년 동안 무대에 올랐다. 지난달 20일 서울 광진구 광장동 예스24 라이브홀에서 열린 ‘2019 IFBB 프로리그 몬스터짐 프로’에서는 안타깝게 6위에 머물며 4연속 올림피아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그의 땀방울은 여전히 식지 않았다. 2019년의 아쉬움은 2020년에 달래면 된다. 김준호를 그가 수장으로 있는 몬스터짐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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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호가 ‘2019 IFBB 프로리그 몬스터짐 프로’에서 완벽한 근육을 뽐내고 있다.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 선수들이 사범님이 아닌 교수님이라고 부르더라.

선수 생활을 하면서 기량 뿐만 아니라 이론도 갖추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공부를 했다. 2012년 경희대학교에서 스포츠의과학 박사과정을 취득해 한양대학교에서 스포츠레저학과 겸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실제 경험과 이론을 선수들에게 동시에 전달 할 수 있어서 기쁘다.

- 신체사이즈는?

키는 163㎝다. 대회에 출전할 때는 87~89㎏을 유지하려고 한다. 평소 체중은 80~82㎏ 정도다. 내가 주로 출전하는 212파운드(96㎏)에서는 불리한 입장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90㎏ 이상이어서 신체의 균형미와 근육미로 상쇄하고 있다.

- 보디빌딩에 입문한 계기는?

아버지께서 일찍 결혼하셔서 21살에 나를 낳으셨다. 고등학생이 되자 자식농사를 일찍 하신 것을 자랑하고 싶으셔서(?) 나를 ‘육체미 체육관’에 데려갔다. 운동을 하면서 무거워서 못 들었던 것을 들게 되면서 성취감, 정복감을 느끼게 됐다.(웃음) 몸이 좋아지면서 주변에서 대회출전을 권유했다. 미스터 코리아 등 한국에서 열린 모든 대회의 고등부는 모조리 휩쓸었다. 대학교 3학년 때는 최연소로 ‘미스터 코리아’에 선발돼 한국 최고의 몸짱으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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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호가 ‘2019 IFBB 프로리그 몬스터짐 프로’에서 완벽한 근육을 뽐내고 있다.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 체육학과에 진학했는데 특기생이었나?

대학은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과에 진학했다. 당시에는 보디빌딩이 초창기라 대한보디빌딩협회 등 인가기관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미스터 코리아 학생부에서 우승했지만 가산점 제도 등이 전혀 없어 열심히 공부해서 진학했다.(웃음)

- 보디빌딩의 매력은?

순수함이다. 보디빌딩은 노력 없이는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노력이 결과로 이어지는 가장 정직하고 공정한 운동이다. 그런 순수함이 매력이다.

- 이번 ‘2019 IFBB 프로리그 몬스터짐 프로’에 출전한 소감은?

아시아 최초로 무제한급 선수들이 출전한 ‘IFBB 프로리그’여서 의미가 컸다. 내가 출전한 212파운드를 비롯해서 무제한급 등 프로선수들이 참여하는 올림피아 프로 퀄리파이어 대회였다. 프로 퀄리파이어는 프로 카드를 얻을 수 있는 대회다. 212파운드는 이전에 아시아에서 열린 적이 있지만 가장 큰 체급인 무제한급은 처음이다. 한국이 보디빌딩 강국으로 우뚝 섰다는 방증이어서 의미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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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호가 ‘2019 IFBB 프로리그 몬스터짐 프로’에서 완벽한 근육을 뽐내고 있다.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 성적이 기대에 못 미쳤다.

6위를 했다. 1위를 하면 자동으로 올림피아에 출전할 수 있는데 아쉽다. 운동을 하면서 부상을 입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대회 출전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올림피아에 진출했는데.

2014년 중국에서 열린 IFBB 프로대회에서 우승하면서 프로자격을 획득했고 뉴욕 프로대회에서 2위를 차지했다. 뉴욕 프로대회 일주일 후 영국에서 열린 보디파워에서 우승하며 올림피아에 진출했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최초의 기록이어서 의미가 컸다. 보디빌더에게 올림피아 무대는 영광 그 자체라고 생각하면 된다.

- 롤모델 또는 라이벌이 있다면.

내 자신이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다. 보디빌딩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또한 만들어 내는 것이 보디빌딩이기 때문에 내가 라이벌이자 롤모델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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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호가 ‘2019 IFBB 프로리그 몬스터짐 프로’에서 완벽한 근육을 뽐내고 있다.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 보디빌딩 철학이 있다면.

톱 선수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동기부여다. 좋은 성적은 동기부여에 좋지만 성적이 나쁘면 슬럼프에 빠질 수 있다.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현재의 나에게 동기부여는 팬과 후배들이다. 나를 목표로 하는 후배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동기부여가 된다. 나를 바라보는 팬들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그런 동기부여가 2015, 2016, 2017년 3년 연속 올림피아에 서게 된 원동력이 됐다.

- 다른 취미는?

없다. 가장 호기심 많고, 다양한 취미활동을 생각할 나이에 보디빌딩을 했기 때문에 보디빌딩이 유일한 취미이자 직업이 됐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보디빌딩 뿐이다.(웃음)

- 보디빌딩을 10대에 시작했다. 세대마다 느낌이 달랐을 텐데.

10대엔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고 운동으로 멋을 부리고 싶었다. 20대는 챔피언이 되면서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때였다. 30대는 교직에 몸을 담았다. 배우고 가르치는 것을 동시에 했던 시기였다. 후배들에게 좋은 정보를 주기 위해 애썼던 기억이 난다. 40대는 그동안의 노력이 결과물로 나타난 시기였다. 올림피아에 진출하는 등 보디빌더로서 영광을 맛봤다. 50대는 이제 시작이다.(웃음) 그동안의 경험을 생각하면 ‘운동은 즐겨야한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즐기면 그것이 동기부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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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호가 ‘2019 IFBB 프로리그 몬스터짐 프로’에서 완벽한 근육을 뽐내고 있다.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 100세 시대다. 국민들에게 건강의 중요성을 알려준다면.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자기관리를 하게 되면 식단 등 기본적인 것에 충실하게 된다. 꾸준한 실천과 자기관리가 100세 시대 건강 관리법이다. 경험자가 되고자하는 욕심이 있어야 한다. 꾸준함, 자기관리, 자기절제가 중요하다.

- 미래의 꿈과 계획은?

선수 발굴이다. 나를 잇는 선수 육성이 꿈이다.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아놀드 클래식’처럼 내 이름을 건 ‘김준호 클래식’을 통해 유망 선수를 발굴하고 있다. 4년째 하고 있다. 대회가 양적, 질적으로 향상되고 있기 때문에 ‘IFBB 프로퀄리파이어’, ‘올림피아 프로퀄리파이어’로 승격시키고 싶다.

- 부부간의 사랑이 애틋하다.

아내가 나를 ‘내 짝지’라고 부른다. 나는 ‘섹시(sexy) 색시’, ‘현주 짝지’라고 부른다.(웃음) 올해로 21년차 부부다. 하지만 지금도 잘 때는 굿나잇 키스를 하고 출근할 때는 굿바이 키스를 한다. 출근해서도 카톡 등으로 수시로 대화를 한다. 나를 이해하고 대신해주는 사람이 아내다. 두 사람의 화목은 가정의 화목으로 이어지고 내 일에도 전파된다. 내가 열심히 후배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내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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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호가 ‘2019 IFBB 프로리그 몬스터짐 프로’에서 완벽한 근육을 뽐내고 있다.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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