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이사장
K리그2 대전 하나시티즌 허정무 이사장이 20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스포츠서울 창간 인터뷰를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전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대전=스포츠서울 도영인기자] “그거 참 재미있는 인연이네요.”

10년 전 ‘허정무호’가 남아공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나이지리아와의 대결에서 2-2로 비기며 한국축구 역사상 첫 원정월드컵 16강 진출을 확정한 날이 2010년 6월 22일이다. 우연치 않게 스포츠서울의 창간일(1985년 6월 22일)에 경사가 났다. 남아공월드컵 당시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허정무(65) 대전 하나시티즌 이사장은 두 날짜의 인연을 듣더니 너털웃음 지었다. 2000년대 한국축구가 가장 크게 주목받았던 두 장면을 꼽자면 2002한일월드컵 4강 신화와 2010년 남아공월드컵 16강 진출이다. 남아공 대회 성과는 홈 이점 없이 한국 축구가 국제 경쟁력을 입증했다는 데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후 브라질과 러시아월드컵을 거치면서 남아공 대회의 성과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됐다. 한국 축구사에 한 획을 그었던 남아공월드컵 이후 허 이사장은 행정가로 변신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과 프로축구연맹 부총재를 지낸 뒤 지난 1월 대전 하나시티즌 이사장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스포츠서울은 지난 20일 대전에서 허 이사장과의 창간 기념 인터뷰를 통해 남아공월드컵이 남긴 유산을 되짚어보고, 한국축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남아공월드컵이 벌써 10년 전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기간인데.

엊그제 일인 것 같다. 월드컵 예선할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2008년 11월 사우디아라비아 원정이다. 그 경기가 본선행의 분수령이었다. 19년만에 원정 승리를 거뒀는데 그 경기로 인해 무패행진이 길게 이어졌다. 생각해보면 바로 며칠 전 같다. 그때 내가 쌍둥이 손주를 얻어서 선수들이 요람 골 세리머니를 해 준 기억이 난다. 손주들은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이다. 그걸 보면 참 오래전 일이긴하다. 사우디 원정 경기 이틀전에 태어난 아이들인데 남아공월드컵에서 16강 진출 후 귀국했을때는 아장아장 걸어서 날 반겨줬다.

-지난 10년 한국축구를 어떻게 보셨나.

남아공 대회가 끝나고 2번이나 월드컵을 거쳤다. 축구 자체도 많이 변하고, 우리 때와는 또 다르다. 축구가 정말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언제까지 어떤 형태로 변할지도 궁금하다. 월드컵만 보면 이제는 우리 축구가 많이 당당해졌지만 한편으론 부족한 점도 있다. 치고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는 아쉽기도 하다.

-지난 두차례 월드컵에서 후배들이 최초 원정 16강 기록을 깨줬으면 하는 바람이 컸을 것 같다.

아직은 아니지만 한국 축구가 월드컵 16강 이상 올라갈 수 있을거라 본다. 그게 한계라고 생각지 않는다. 되돌려보면 우리 선수들이 한단계만 발전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러시아월드컵때 모두 지옥의 조라고 이야기했다. 난 그때도 조편성이 잘됐다고 한 사람이다. 그때 스웨덴은 남아공 1차전 상대 그리스와 비슷하다고 봤다. 1차전은 무조건 이겨야한다고 했다. 멕시코와는 여러번 붙었지만 우리가 못한 적이 없다. 내가 선수 시절때도 잘 싸웠다. 독일이 강팀이지만 월드컵에서 3번째 대결이었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독일이 우리한테 혼났다. 2002년 한일월드컵 준결승때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잘 된 조편성으로 봤다. 하지만 본선 첫 경기인 스웨덴전이 아쉬웠다. 좀 더 공격적으로 했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팀이었다. 한국 축구는 여기가 한계가 아니다. 월드컵 8강까지는 갈 수 있다. 충분히 저력이 있다고 본다.

허정무 이사장
K리그2 대전 하나시티즌 허정무 이사장이 20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스포츠서울 창간 인터뷰를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대전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앞으로 월드컵 16강 이상 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K리그가 살아야한다. 좀 더 수준 높아지고 커져야한다. 그게 한국 축구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K리그가 커야 우리 선수들의 해외진출도 많아지고 수준이 높아질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유소년 축구다. K리그 유스는 구단들과 프로축구연맹에서 주도해서 끌고 나가고 있다. 축구협회에서도 멀리 보고 제대로 이끌어줘야하는 의무가 있다. K리그 유스 시스템을 의무화 한 것이 한국 축구 발전에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 나도 구단에 와서 유소년에 대해 가장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 아직 시스템이 완벽하지는 않다. 다만 나름대로 각 구단들이 신경쓰고 있다.

-남아공월드컵 16강전 우루과이와 경기에 대해 복기를 많이 하셨을 것 같다.

그 날 경기 끝나고 인터뷰 하러 가기전에 우리 선수들 주저 앉은거 보고 목이 메였다. 그래서 한 템포를 늦추고 인터뷰장으로 향할 정도였다. 너무 아쉬운 경기로 머리속에 남아 있다. 복기하면서 참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났다. 그때 안정환을 썼으면 어땠을까. 마지막에 (박)지성이가 기가막힌 패스로 연결해 준 (이)동국이의 슛이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정)성룡이 대신 골키퍼로 (이)운재가 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하지만 다 뒤늦은 후회였다. 실점 장면들도 아쉬웠다. 둘 다 주지 않아도 될 실점이었다. 상대인 우루과이는 골 찬스를 모두 살렸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이제는 월드컵을 예선부터 본선까지 온전히 치를 수 있는 최소 4년짜리 감독이 나올때도 된 것 같은데.

감독 선정을 할 때 잘해야한다. 이것저것 분석을 해야한다. 즉흥적으로 할 게 아니다. 장기적으로 믿고 맡길 사령탑을 선정해야 한다. 나도 축구협회에서 있었지만 여론에 의해 다급하게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독일 같은 경우 감독 선정에 대한 시스템이 잘 돼 있다. 감독 자질을 미리 검증하는 시스템과 중간 평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그런 시스템의 장점을 잘 지켜봐야한다.

허정무 이사장
K리그2 대전 하나시티즌 허정무 이사장이 20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스포츠서울 창간 인터뷰를 하고 있다. 대전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구단의 수장으로서 축구가 새롭게 다가올 수 있을 것 같다.

승부의 세계에만 있다가 구단의 미래, 장래, 비전을 고민해야하는 자리에 앉게 됐다. 예산도 생각을 해야하는 위치다. 지도자 시절에는 선수단만 챙기면 됐지만 이제는 아니다. 난 선수, 지도자를 다 거쳤기 때문에 선수단을 잘 알고 있다. 필요로 하는 것들을 챙기려고 노력한다. 결국 팀이 살아야 구단도 살 수 있다. 구단이 중심을 잡아야 선수단도 잘 될 수 있다. 상생해야한다. 계획대로 해나가고 있다. 우린 비영리재단이다. 지역민을 위한 봉사가 첫번째다. 구단 자체적인 수입원도 있어야 재투자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팬들이 좋아하는 그런 축구를 해야한다. 팬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팀이 돼야한다.

-축구인생을 90분 경기로 따지면 지금 어디쯤인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도전이라 생각한다. 구단을 맡았으니 이것도 승부다. 승부 세계에서 마지막 도전이다. 죽을때까지 축구계에 남겠다는게 내 생각이다. 축구를 통해 이만큼 대우받고, 사랑받고 살아왔다. 이제는 내가 축구를 통해 받은 관심과 사랑을 돌려줘야한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유소년 육성과 어린 선수들의 성장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 평생을 90분이라고 보면, 지금은 후반전 어디쯤 와 있는 것 같다.

-남은 축구인생에서 가장 이루고 싶은 것은.

기왕에 축구를 했으니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 존경받을 수 있는 그런 축구인이 되고 싶다. 어차피 축구인인데 좋은 일, 큰 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일을 했다는 이야기를 먼 훗날 듣고 싶다.

doku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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