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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범죄는 무섭게 진화한다. 체육계의 범죄는 더더욱 그런 것 같다. 예전 수법이 너무 천진난만했던 탓도 있겠지만 지금은 머리를 쓰는 쪽이 워낙 교묘하게 접근하는 통에 간담이 서늘하다. 정책의 허점을 파고드는 수법 또한 지능화돼 자칫 긴장의 고삐를 놓쳤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체육계의 부정 부패가 풍부한 정보와 정교한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뿌리뽑기 힘든 것도 바로 그래서다.

난데 없이 체육계의 진화하는 범죄 양상을 거론한 데는 최근 악화된 체육계의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의 체육농단으로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하나 둘씩 체육계를 떠나고 있는 상황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기업들이 떠난 자리에는 체육을 통해 기생하는 경기인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여전히 체육을 봉사의 터전이 아니라 생활의 발판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체육에 기생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체육을 생활수단으로 삼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건 가슴 아픈 일이지만 여기서 넋을 놓았다간 모두가 불행에 빠지게 된다. 종목 단체의 회장 요건 중 가장 중요한 건 경제적 지원이다. 체육에 기생하는 경기인 마피아들은 그럴 능력이 없다. 따라서 경제적 능력이 없는 체육계 마피아들이 회장 선거에 나서 표를 얻기 위해선 경제적 지원 세력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두 세력의 공조는 철저한 비지니스 차원에서 이뤄지는 거래다. 경제적 지원 세력은 곧 해당 종목과 이해관계가 있는 업체일 수밖에 없다. 선거 이전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은 후보가 당선이 되면 결국 업체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행정을 통해 부정과 비리의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이게 바로 검은 커넥션의 최종 귀착지다. 이러한 구도로 체육단체 회장 선거가 진행되면 특정업체가 사실상 선거를 진두지휘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무서운 일이다.

최근 코 앞에 다가온 종목단체 회장 선거에서 이러한 조짐이 불거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섞인 주장이다. 특히 경기장 및 시설 공인을 놓고 상당한 돈이 오가는 종목이나 용품 시장이 큰 종목에선 업자들이 선거에 개입해 판을 움직이고 있는 정황이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구체적 증거는 아직 드러나지 않지만 뜻있는 기업들이 떠나간 체육 현장에서 얄팍한 업자들의 농간으로 체육계가 또다시 황폐화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탄탄한 물적 토대를 구축하기 힘든 체육계의 특성상 이해관계에 민감한 업체들이 선거 전에 특정 후보와 결탁해 선거를 치른다면 결과는 뻔하다. 해당 종목과 첨예한 이해관계가 결부된 업자가 미는 후보가 선거에서 승리하게 되면 그 판은 부정과 부패의 온상이 될 수밖에 없다. 특정 업체와 결탁해 온갖 비리를 저질렀던 대표적인 종목은 지난 2016년 국민들로부터 공분을 산 수영이다. 특정업체가 수영장 공인을 사실상 독점하면서 오고간 돈의 액수는 10억원을 훌쩍 넘겼고 많은 경기인들이 이 사건으로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수영은 국가대표 공인용품을 둘러싸고도 말들이 많았다. 최근에도 공인용품 선정을 둘러싸고 연맹회장과 부회장 등이 모두 자격정지의 중징계를 받기도 했다. 시설 공인과 용품 공인을 사실상 독점화하면 어떻게 될까. 연맹은 가난해지고 이와 결탁한 특정인의 배를 불리는 상황이 연출될 뿐이다. 연맹이 부유해지는 방법은 간단하다. 시설 공인과 용품 공인을 독점체제가 아닌 경쟁체제로 바꾸는 게 지름길이다.

체육계의 범죄는 최근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정보가 부족하고 현장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한국 체육행정의 후진성 탓이다. 체육행정의 개혁의지보다 이를 교묘하게 벗어나려는 적폐의 변신 속도가 더욱 빨라서인지 개혁은 뜻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개혁을 비웃고 부정과 부패의 뿌리를 보전하려는 세력들은 교묘하고 지능적인 방식으로 새롭게 무장하고 있는 듯하다. 자신들의 실체를 숨기고 특정 후보를 지원하는 대리 선거전이 바로 그것이다.

특정업체와 결탁한 체육 단체 회장 선거는 벼랑끝에 선 적폐의 무서운 생존본능에 다름아니다. 진화된 범죄를 단죄하기 위해선 그들이 발붙일 틈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수영의 예를 들자면 시설공인에서 집행부 인사에게 뇌물을 건넨 업체를 차제에 공인에서 아예 배제하는 것도 좋은 방안 중 하나다.

교묘하게 진화하는 체육계의 부정과 비리는 결국 더 빨리 변하지 않고선 차단할 길이 없다. 체육행정의 주체인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그리고 대한체육회가 불순한 현장의 숨가뿐 변신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이유다.

편집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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