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예능

[스포츠서울 정하은기자]‘잘 노는 언니들’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오랫동안 예능 프로그램은 관성처럼 몇몇 남성 출연자들이 주도해왔다. 그러나 2018년부터 방송계에 불기 시작한 ‘여풍’으로 이영자, 박나래가 연이어 연예대상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김숙, 송은이, 장도연 등도 다양한 예능에서 활약 중이다. 또 전문 예능인과 방송인이 아니더라도 다채로운 여성 출연자로 채워진 프로그램도 인기를 얻으며 예능계 우먼파워가 더 커지고 있다.

평균연령이 무려 68살에 이르는 노년 여성들의 삶을 비추며 ‘MSG’ 없는 예능으로 주목받는 방송이 있다. 지난달부터 방송 중인 KBS2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는 연기자 박원숙, 김영란, 문숙, 가수 혜은이가 함께 살면서 서로의 상처와 고민을 나누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많은 중년여성들에게 공감을 주는데 멈추지 않는다. 여성이 혼자 사는 것 그리고 나이 드는 것에 ‘의미 부여’를 하는 사회 속에서 노년에 접어든 출연진들이 허튼 농담에 웃음짓고 집안일에도 서툰 모습을 비추며 어떤 여성보다 활기차고 유쾌한 모습으로 시청자에게 웃음과 용기를 건네는 중이다.

여성 스포츠스타들을 전면에 내세워 차별화를 꾀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E채널 ‘노는 언니’는 골프 여제 박세리를 비롯해 펜싱 선수 남현희, 쌍둥이 배구선수 이재영, 이다영, 피겨스케이팅 선수 곽민정, 수영선수 정유인까지 6명의 여성 스포츠스타로 구성해 눈길을 끈다. 그동안 다양한 스포츠 예능프로그램이 나왔지만, 여성으로만 출연진을 꾸린 경우는 처음이다. 강호동, 서장훈, 안정환 등 그간 운동선수 출신 방송인이 출연한 예능은 수도 없이 나왔지만 여자 선수들의 입지는 그다지 넓지 않았던게 사실. 경기장을 벗어나 웃고 떠들고 즐기는 스포츠 여제들의 모습이 색다른 웃음을 안긴다는 평이다.

MBC ‘나 혼자 산다’는 최근 한혜진, 박나래, 그룹 마마무의 화사 등 여성 멤버들만 따로 모아 ‘여은파’라는 웹예능을 선보이며 본방송 만큼이나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세 사람은 옹기종기 앉아 지상파 방송에서는 차마 다하지 못했던 솔직하고 ‘찐한’ 토크로 ‘매운맛’ 예능이라 불리며 출범 한달 만에 유튜부 채널 누적 조회수 1000만회를 돌파했다. 최근 예능 포텐 정점에 서있는 두 예능인 박나래, 장도연이 MC를 맡은 SBS ‘박장데소’도 재치있는 입담과 찰떡 케미로 커플 맞춤형 데이트 컨설팅을 그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처럼 이젠 ’여성 예능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공식도 깨지고 있다. 이전엔 여성 출연자들이 예능에서 한정적인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젠 중년 여배우부터 코미디언, 스포츠스타 등 다양한 분야의 여성 출연진들이 오롯이 이끄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광범위하게 쏟아지고 있다. 여성 출연자들의 당당함, 그들이 빚어내는 호흡과 연대감 등으로 공감과 재미를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는 반응이다.

전문가들은 방송계의 이같은 흐름을 오랫동안 기울어진 예능계의 젠더적인 균형을 맞춰가는 첫 걸음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 방송 관계자는 “최근 여성 출연자들이 주도하는 예능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고, 관련 기획안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며 “당당한 여성들의 모습을 통한 통쾌함과 공감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텔링은 기존의 힘과 경쟁만 강조되던 남성 중심 예능에서 탈피하는 주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봤다.

다만 넘어야 할 과제와 시선도 여전히 남아있다. 한 예능 PD는 “여성 출연자로만 꾸린 예능을 ‘모험’으로 여기는 분위기는 여전히 많다”며 “첫 숟가락에 배부를 수 없지 않나. 독립적이며 주체적인 여성들이 만들어내는 정서적 연대감을 꾸준한 시도로 계속 늘려갈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jayee212@sportsseoul.com

사진 | 각 방송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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