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필자와 비슷한 나이대인 지인이 전화를 하더니 다짜고짜 “지금이라도 무술을 배우면 상대방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뭔가 분이 풀리지 않은 듯한 목소리에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10초컷이라는 말 듣고 잠이 안 온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스토리는 이렇다. 주말에 가족과 함께 카페 나들이를 갔는데, 이동하다가 한 젊은 남성과 부딪혀 시비가 걸렸다. 상대가 거칠게 나왔지만 가족도 있고 보는 눈들도 많으니 좋게좋게 얘기해서 상황을 진정시키려 했는데, 상대 남성이 갑자기 “붙으면 10초 컷이다(10초 안에 이길 수 있다)”며 도발을 하더라는 것이다.

다행히 일이 더 커지지 않고 상황이 마무리됐는데, 문제는 이후 집에 돌아오고 나니 아까 그 도발 때 당당하게 맞서지 못 한 것이 너무 후회되더란다. 본인 스스로는 특별히 주눅이 들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런 비아냥에 말로라도 제대로 대응을 못 했으니 제3자가 보기엔 ‘힘의 논리에 밀려 물러난 상황’이 되버린 셈. 사나이 자존심에 상처가 난 것이다.

이런 경우는 사실 매일 어디선가 일어난다. “너 따위 10초 컷”, 자매품으로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게”도 있다. 매일 지구촌 곳곳에서는 시비가 벌어지고, 실제로 주먹이 오가기 전, 아니 주먹이 오갈 생각이 전혀 없어도 저런 말들로 상대를 깎아내린다. 사실, 이런 세치 혀 공격 이후 실제로 주먹다짐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실제로 주먹이 날아온다’는 걱정 때문에 주눅이 들어 대응이 소극적으로 되는 사람들은 반드시 있다.

호신술의 필요성을 논할 때 필자는 ‘실제로 주먹이나 칼이 다가오는 상황에 대응하는 기술 외에도 위협적인 상황을 적극적으로 헤쳐 나아갈 수 있는 단단한 정신과 마음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위와 같은 에피소드가 좋은 예시다. 자신의 덩치를 믿고, 자신의 강압적이고 저질스러운 욕설 능력을 믿고 상대를 윽박지르는 이들에게 이후 벌어질 수 있는 상황까지 계산에 넣으며 당당하게 눈빛과 몸짓, 말로 맞서려면 실제 주먹이 오갈 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실력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어휴, 그런 인간들이 그렇게 함부로 내지르는 말에 뭐 그리 흥분하나. 그냥 흘려들으면 되지”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다. 그렇게 해도 된다. 정말 정신수양 수준이 높아서 진정으로 들은 것을 흘려버릴 수 있다면. 하지만, 온라인 게임을 하다가 채팅으로 “게임 참 못 한다” 소리만 들어도 발끈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인데 눈 앞에서 저런 말을 듣고 그냥 흘리고 넘길 수 있을까? 참는 것이 정말 참는 것일까? 아니면 힘에 밀려 순한 양이 되는 것일까.

“나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렇게 사소한 시비 붙을 일이 없다”는 분들도 계신다. 절대 없지는 않을 거라 필자는 생각하지만, 좋은 환경에서 좋은 분들과만 교류하시는 분이라면 고성이 오가는 시비가 없을 수 있다. 자, 하지만, 그분들의 자녀도 과연 그럴까?

실제로 필자의 무술도관에서 수련하시는 30대 후반부터 40대 후반까지의 분들은 스스로를 위해서도 있지만 이제 곧 학교에 들어갈 자녀들에게 전수해주기 위해 열심히 배움의 길을 가고 계신다. 자신이 자라오면서 맞닥뜨렸던 불합리한 상황을,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녀가 똑같이 경험하도록 둘 수는 없기에 ‘굳셈’, ‘강함’을 직접 가르치고 싶은 것이다. 게다가 강해지는 방법을 올바르게 배우면 자신이 가진 그 힘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되는 만큼 여기저기 가볍게 시비나 털고 다니는 그런 인간이 되지 않을 가능성도 커진다.

이렇게 강조해도 “그런 거 배워봤자 아무 쓸모 없다”, “그냥 도망가는 게 최고다”, “애초에 그런 곳에 안 가면 되지”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분들이 있다. 아, 목소리가 아니라 키보드를 강하게 두들기는 것이겠다. 필자 앞에서, 혹은 노력하는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은 뭘 할 수 있는지 보여주면서 저렇게 직접 말하는 사람은 이제까지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필요없다”, “헛수고다”라고 하시는 분들, 언젠가 “너 따위 10초 컷” 같은 대사를 듣고 이불킥 하며 잠 못 드는 밤이 없기를 바란다.

노경열 JKD KOREA 정무절권도 대한민국 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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