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파리=정다워 기자] “모두가 내 이름을 불러줄 때, 행복감을 느꼈다. 환상적인 경험이다.”

탁구는 동양, 혹은 유럽 선수들이 주를 이룬다. 국제 대회 탁구장에서 흑인 선수가 뛰는 모습을 볼 기회는 많지 않다. 2024 파리올림픽에 출전한 아프리카 국적의 남자 선수는 전체 67명 중 8명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대부분이 참가에 의의를 두는 하위 랭커들이다.

29일 신유빈의 단식 64강 경기가 열린 아레나 파리 쉬드를 찾았다. 탁구 간판 신유빈의 단식 첫 경기를 취재하는 게 목적이었는데 같은 시간 열린 다른 경기에 시선이 갔다.

아레나에는 총 4개의 탁구대가 놓여 있다. 신유빈은 취재석에서 보기에 맨 왼쪽에서 경기했다. 아레나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의 시선은 중앙 오른쪽 2번 테이블에 꽂혔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네갈 국적의 이브라히마 디아오와 홍콩의 강자 웡춘팅의 경기였다.

웡춘팅은 월드 투어 우승 경험이 있는 베테랑이고, 올림픽에서 메달을 노릴 만한 선수다. 반면 디아오는 탁구계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이다. 의외로 경기 내용은 용호상박. 디아오가 첫 번째 게임을 따내면서 의외의 양상을 연출했다.

경기 내용만큼이나 디아오의 태도가 흥미로웠다. 보통 탁구 경기에서는 선수가 득점 후에도 크게 세리머니를 하는 편은 아니다.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하는 게 거의 전부다. 디아오는 달랐다. 두 손을 높이 드는 건 얌전해 보일 정도였고, 코트 주변을 뛰어다니며 가감 없이 기쁨을 표현했다. 거의 춤을 추는 것 같은 쇼맨십에 관중은 열광했다. 어느새 모든 관중이 디아오의 이름을 연호했다.

이번 대회 대부분 경기장 관중석은 간이 구조물이다. 발을 구르면 엄청난 소음을 내며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수천 명의 관중이 동시에 발을 구르며 디아오의 이름을 외치니 위압감이 느껴지는 응원이 완성됐다. 디아오는 세네갈 국적이지만, 파리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홈 그라운드 이점을 십분 활용하는 모습이었다. 왕춘팅은 당황한 듯 페이스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실력 차는 존재했다. 디아오는 마지막 게임까지 끌고 갔지만 한계 탓에 3-4로 패했다. 그렇게 그의 단식은 마무리됐다.

패했지만 관중 대다수는 디아오에게 더 큰 박수를 보냈다. 디아오가 퇴장할 때도 그의 이름이 아레나에 크게 울려 퍼졌다. 디아오는 감사의 뜻으로 손 키스를 보내며 퇴장했다.

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디아오는 “생각보다 좋은 경기를 했다. 상대가 강했지만 나도 최선을 다했다”며 “나만의 페이스를 찾기 위해 조금 과감하게 세리머니를 하는 편이다. 도움이 된다. 그래서인지 많은 관중이 나를 응원했다. 모두가 내 이름을 부르며 응원할 때 행복함을 느꼈다. 내가 사는 곳에서 정말 환상적인 경험을 했다. 패했지만 만족한다. 올림픽이라는 무대에서 뛰어본 것만으로도 좋다. 즐거웠다”고 결과에 승복했다. 경기에서 패했지만 그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우리는 올림픽 메달, 결과에 집중한다. 간혹 메달을 따도 고개를 숙이는 선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디아오는 진정한 올림피언이다. 자신이 준비한 모든 것을 쏟은 후 결과에 승복하는 태도. 이게 바로 진정한 올림픽의 자세가 아닐까. we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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