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장강훈기자] “고집대로 해서 우승했다. 계속 고집대로 하겠다.”

호쾌하고 과감한 샷처럼 대답도 시원시원하다. 필드 밖에서는 소녀티를 벗지 못한 천진함이 엿보이지만, 티잉 그라운드에 서는 순간 눈빛이 달라진다. 주위 조언에도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던 황유민(20·롯데)이 생애 첫 우승을 발판삼아 더욱 확고한 ‘나의 길’을 다지겠다고 밝혔다.

황유민은 올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도 손에 꼽히는 기대주였다. 김민별(하이트진로) 방신실(KB금융그룹·이상 19) 등 동기들에 비해 체격은 작지만 평균 비거리 257야드에 달하는 호쾌한 장타로 아마추어 때부터 될성부른 떡잎으로 불렸다. ‘슈퍼루키’로 큰 기대를 받고 정규투어에 입성했는데, 시즌 초반에는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경우가 많았다.

장타자 특유의 ‘와이파이 샷’ 탓에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 황유민은 “시즌 초반에는 샷이 많이 흔들리고 경기가 안풀릴 때가 많았다. 맥콜·모나 용평오픈 때부터 드라이버 티샷 구질이 일관되게 나온다고 느껴 내 샷을 믿고 자신있게 쳤다”고 밝혔다. 경기가 안풀려도 “조금씩 나아지다보면 꼭 우승할 것”이라고 자신을 다독였고, 지난 9일 꿈에 그리던 KLPGA투어 첫승(대유위니아·MBN 여자오픈)을 일궈낸 뒤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기쁘다”며 MZ다운 솔직함을 뽐냈다.

티샷이 왼쪽으로 감기는 편이어서 페이드 구질을 구사하는 훈련을 반복했다. 덕분에 일관성을 찾았고 자신감도 생겼다. 황유민은 “내 고집대로 해서 따낸 우승이다. 앞으로도 내 고집대로 플레이할 것”이라며 정면돌파를 예고했다. ‘돌격대장’이라는 별칭에 걸맞은 과감하고 자신있는 승부로 존재감을 각인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욕심이 많다. 지난 5월 동기인 방신실이 E1채리티 오픈에서 신인 중 가장 먼저 우승 트로피를 따내자 “자극이 많이 됐다”고 밝혔다. 대회 때마다 또다른 동기인 김민별이 우승후보로 거론돼 살짝 소외감을 느낄 법도했다. 특히 대유위니아·MBN오픈에서는 김민별과 연장전을 치르는 기구한 운명도 맞이했다. 그는 “(김)민별이도 굉장히 잘치는 친구다. 잘하고 있지만, 내 플레이만 잘하면 무조건 내가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죽지 않으려고 했다”는 말에서 승부욕과 집념이 묻어났다.

자신의 예상보다 늦게 첫승을 따내 “3승이던 목표를 1승 추가로 일단 변경할 것”이라며 웃은 황유민은 “신인왕보다는 우승을 더 하고 싶다”는 말로 구체적인 목표를 공개했다.

황유민은 ‘고집이 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고집을 꺾기보다 결과를 증명해 비판을 잠재우는 쪽을 택한다. 사연이 있다. 할아버지의 사과 덕분이다. 황유민은 “교장 선생님을 지낸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운동보다 공부하기를 원하셨다. 그래도 운동을 선택했는데, 국가대표가 되면서 ‘내 생각이 틀렸다. 정말 열심히 해보아라’시면서 응원을 보내주셨다”고 돌아봤다.

그런 할아버지가 아흔을 넘기고 병을 앓고 있으니 자신의 스타일대로 우승을 따내 기력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게 손녀의 마음이다. 황유민은 “우승 소식을 듣고 할아버지께서 더 힘내셔서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즌 2승을 빨리 따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담겨있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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